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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인터넷검색 및 본인의 약간의 수정

 

이글을 읽고계신 분들중에 자신은 한달에 책을 얼마나 읽고 계시는지 여쭤봅니다.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책을 많이 읽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실것 입니다. 그리고 이블로그를 운영하는 저는 한달에 책을 얼마나 읽을까요? 많이들 궁금해 하실것 입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일년에 책한권도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떡게 이러한 블로그를 운영할수 있는지 궁금해 하실분들 많으실 것입니다.


일단 제가 어째서 책한권도 읽지 않는지부터 말씀을 드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뭐 책한권도 읽지않는것이 결코 좋다는 이야기가 아님을 밝혀놓고서 이야기를 풀어가야 서로간에 오해가 생기지 않을것 입니다. 일단 저는 사업을 하고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사업체를 유명한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책읽을 시간동안 저의 사업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을 합니다. 다시말하면 책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입니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서 읽으면 될일이라고 말씀을 하실분이 계실것 같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주말에도 일합니다. 일요일에는 다음주의 계획을 잡느라 책읽을 시간이 없고 토요일에도 늦게까지 일하느라 책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서 이곳에 블로그를 운영할수가 있는지 궁금해 하실것 입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저의 사업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을 합니다. 그러한 고민들의 결과물들을 이곳 블로그에 글로써 남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글들을 돌아보시면 아실것입니다. 저의 고민이나 생각들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서 그에대한 저의 생각을 글로써 표현하는 것입니다. 뭐 특별히 글쓰는 방법을 배운적도 없습니다. 대학은 공대를 나와서 글쓰기와도 관련이 거의없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딱맞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에힘은 정말로 위대합니다. 공대출신의 제가 이렇게 멋진 글들을 써낼수 있도록 만드는것은 사람의 생각에힘이라고 볼수가 있는것 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시간이 생긴다면 책을 읽을까요? 아마도 전공관련하여 책정도는 읽을수 있지만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들은 읽을계획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다른사람이 작성한 글을 읽게되면 오히려 그것이 제블로그의 독특한 글맛을 없애버릴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블로그를 운영하는 동안에는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가까이 하지않을 생각입니다.


책은 많이보면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책의 한가지 단점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하는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다른사람의 생각이 책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생각을 이곳 블로그에 남기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다른사람이 작성한 책을 보게되면 알게모르게 이곳 블로그에 그사람의 생각이 녹아나게 될것입니다. 그러면 이곳 블로그는 저만의 블로그가 아니라 저의생각 + 다른사람의 생각이 녹아날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블로그는 저의 블로그라고 할수가 없는것 입니다.


글쓰기에는 글감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사람이쓴 책보다는 네티즌들이 뉴스등에 작성한 댓글을 글감으로 많이 활용합니다. 거기다가 저의 경험과 예전에 열심히 공부하였던 경제관련 정보와 국제정세 관련된 정보들을 활용하기도 하고, 아니면 제가 사업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험하였던 많은것들을 다시금 기억해내서 그것을 글로써 작성하는것 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저의 블로그가 다른사람의 책이나 다른 블로거의 블로그와 완전히 다른 색다른 블로그가 되는것 입니다.


노파심에서 다시한번 말씀을 드리지만 독서를 하지말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하여 이글을 작성하는것 절대로 아닙니다. 독서는 나쁜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저만의 독특한 블로그를 원하기 때문에 저는 책읽기를 하지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책읽기에대한 저의 입장은 다른사람과 다르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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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파이낸셜뉴스

 

이번글은 저의 창피하였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솔직히 창피한 이야기는 잘안하게 되지만 그런다고 벌어졌던일이 없어지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의 창피하였던 이야기로 다른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저는 기꺼이 저의 창피하였던 이야기를 숨김없이 할생각 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창피하였던 이야기를 자기자신이 한다는것은 정말로 큰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저의 창피하였던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30대 초반에 사업을 하다가 망한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먹고살기 위해서 취업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취업사이트에 들어가서 구인을 하는업체들에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계속해서 보냈습니다. 그렇게 수십통의 이력서를 보내고나서 면접을 오라는곳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기쁜마음으로 면접을 갔습니다. 그회사는 독일계 회사로 한글로 말하면 "금실"이라고 하고, 영어로 말하면 "골드와이어" 정도가 적당한 말입니다. 그냥 한글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그회사는 금실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진짜 금으로 실처럼 가늘게 만들어냅니다. 그 금실이 사용되는곳은 반도체 산업에 사용됩니다. 웨이퍼라는 회로가 그려진 실리콘과 작은 인쇄회로기판을 이어줘서 전기를 통하게 하는 목적으로 금실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그비싼 금을 사용해서 실을 만드는지 궁금하신 분이 계실것 같아서 잠시만 그에대하여 이야기 하고서 저의이야기를 이어갈까 합니다. 사실 구리를 사용해도 되기는 할것이지만 구리를 실처럼 가늘게 뽑아내는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순도가 아주높은 금은 연성이 좋아서 실의 두께를 얇게 뽑아낼수 있기 때문에 비싸도 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금이 전기전도성이 구리와 비교하여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반도체 크기를 자꾸만 줄이는 추세에 구리는 전혀 맞지않고 당연히 순도가 아주높은 금을 사용하는것이 적합합니다.


이쯤에서 다시금 본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그회사에 면접을 봅니다. 면접관으로 그회사의 사장님, 인사쪽사람, 제가 지원하였던 영업부 팀장이 면접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면접분위기도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나서 영어시험을 봅니다. 외국계 회사라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저는 영어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답안지를 엉망진창으로 하고서 그자리를 나왔습니다. 면접분위기로는 합격이고 영어답안지로는 불합격이 맞습니다. 그렇게 집에와서 전화를 기다립니다.


면접을 치른지 2 ~ 3일 정도가 흐른것 같습니다. 심심해서 저의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친구 면접을 보러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면접을 치루고나서 얼굴이나 보자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친구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더좋은 회사로 이직을 원하는 친구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친구이지만 저와 전공도 비슷해서 자주 전공에 관하여 이야기 하던 친구 이기도 합니다. 이친구 면접을 치루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정하고 그친구를 만났습니다.


저는 이친구에게 내가 얼마전에 면접을 치루고온 회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그친구가 자신이 오늘 면접을 보고온 회사와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이야기 하고, 회사명을 들어보니 제가 면접을 치루고온 그회사 입니다. 전공이 비슷하니 오라는 회사도 비슷한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흐르고 저에게는 전화가 안왔고 그친구에게는 전화가 와서 저는 그회사에 떨어지고, 그친구는 그회사에 붙어서 그친구는 이직에 성공하게 됩니다. 솔직히 당시에 저는 취업이 되어있지 않은상태라 꼭 붙었으면 좋았겠고, 그친구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떨어져도 아쉽지 않은상황인데 세상은 그렇게 공평하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거기다가 이친구와 제가 그회사 입사에 경쟁을 한것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친구 그회사 2달정도 다니다가 퇴사를 합니다. 저는 들어가고 싶어했던 회사인데 이친구는 아쉽지 않은상황에서 합격을 해놓으니 쉽게 그만둡니다.


어쨌든지 저와 친한친구와 같은회사에 지원했던적이 있어서 그기억을 한번 적어본 것입니다. 그회사에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회사 금실을 만드는 회사라고 서두에 소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회사 금실의 양을 조금씩 줄여서 납품하였던 경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납품하다가 납품을 받았던 회사의 직원이 할일도 없고 지루해서 납품받은 금실의양을 직접 재어보았다가 덜컥 걸려버린것 입니다. 금이 워낙에 비싸다보니 양을 조금만 덜납품 하여도 상당한 이득을 취할수 있는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납품양을 줄여팔다가 심심해하던 엔지니어에게 딱걸린 것이고, 그래서 신문에도 나왔던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오래전 일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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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세계일보

 

저의 블로그에서는 정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지않으려고 무진장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글은 정치에 대하여 제대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정치가 우리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올바른 정치인을 뽑을것이고, 그로인하여 많은사람들이 혜택을 보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치는 간단합니다. 국가의 모든 살림살이를 맡아서 하는것이 정치입니다. 국세청에서는 세금을 걷어서 국가재정을 채우고, 기타 다른곳에 적절히 국가재정을 소비하는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은 그러한 재정을 엄한곳에 사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감시하여야할 책임이 있는것입니다.
 
정치를 조금더 깊이있게 들어가보면, 위와같이 적절한곳에 국가재정을 소비하는데 국민들이 하나하나 확인하고 재정을 소비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국가적인 낭비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을 뽑아서 국민들의 대표로 재정을 적절한곳에 사용하도록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일전에도 이야기 하였듯이 국가에 고위직에 있는사람은 국민들의 종이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그이유는 위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국민들이 국가재정을 일일이 보는것이 엄청난 시간과 물리적인 낭비라서 국민들의 대표를 뽑아서 그들이 재정을 적절히 나누어 가질수 있도록 하여야하는 책임이 있는것입니다.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국민이뽑은 종입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모든일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없도록 골고루 혜택이 가도록 노력하여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야 하는것이 맞습니다. 국민위에 서있는 대통령은 존재할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국민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여 국가의 재산들이 골고루 혜택이 가도록 노력할 사람에게 투표를 하는것입니다.
 
제가아는 어느분은 대통령이 하라고 한다고 하여서 무조건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것 입니다. 특히나 예전에 이명박씨가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한다고 할때에 미국산 소고기를 먹겠다고 하신분도 계십니다. 대통령이 시킨다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행동이고 그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잘못했으면 피켓을 들고나가서라도 잘못을 이야기 하여야 합니다.
 
시위에 대하여서도 한말씀 드리면, 시위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이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이유는 국가의 정책이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국가에 막대한 국부가 손상될 우려가 있을때는 피켓을 들고나가 거리시위를 하는것이 맞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행동이 시위를 하는것입니다. 방안에 앉아서 목소리를 높인다고 방송국에서 취재하지 않습니다. 시위라도 하여서 많은사람에게 생각을 밝히는것도 민주주의의 특권이 맞습니다. 그래서 시위한다고 누구는 물대포를 펑펑 쏘아대는데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 맞습니다. 어디감히 종이 주인에게 물대포를 쏘느냐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국민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은 존중받고 존경하는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정치후진국이고, 앞으로 이글이 우리나라가 정치선진국이 되는데 도움이되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참여정부때는 피켓들고 시위하면 경찰들이 안전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쳐주었고, 전 정부와 지금의 정부는 물대포를 쏩니다. 그렇다면 어느정부가 정상적인 정부인지 맞춰보라는 질문을 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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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경향신문

 

"진실의 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말의 뜻은 최후의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곱씹어 생각해보면 어떤일에대한 중간과정이 존재하지만 마지막에 진실의 순간이 찾아오면 최후에 선택이 앞에있었던 중간과정의 일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진실의 순간은 순간 찰라의 결정으로 모든것이 결정됨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진실의 순간이 자신에게 찾아오면 자신은 어떠한 선택을 통하여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 하여야하는 순간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진실을 보이지 않고 외곡된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여주곤 합니다. 이유는 자신의 진실의 모습은 볼품없는 자신이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에 명품가방도 걸치기도 하고, 혹은 자신의 팔목에 멋들어진 시계로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감출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진실의 순간을 피하고져 합니다.


진실의 순간에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한가지 예를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에 제가 생각나는 예로써 아마도 진실의 순간에대하여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것 입니다. 매주마다 로또라는 복권추첨을 합니다. 저는 물론 복권을 거의사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딱두번 사보았습니다. 한번은 당첨금이 가장많이 걸렸을때와 최근에 제친구가 제가 로또에 당첨되는꿈을 꾸었다고 꼭사보라고 권유하는 바람에 저를 생각해주는 그친구를 위해서 사본것이 전부입니다.


말이 잠시 옆으로 샜습니다. 다시, 로또복권을 삽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는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1등에 당첨되면 이거해야지, 저거해야지"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로또복권을 구매한 사람에게 진짜로 1등에 당첨될것 같냐고 물어보면 습관적으로 구매한다는 사람도있고 혹은 어제밤 꿈이 좋아서 구매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다른이유를 가져다 붙여서 자신이 구매한 로또복권이 당첨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로또복권을 구매한 사람에게 당신이 1등에 당첨된다면 10억을 더 줄테니 당신이 1등에 당첨되지 않으면 나에게 10만원을 달라고 무조건 해야하는 내기를 건다면 그사람들은 어떡게 할까요? 그사람들의 선택은 자신이 1등에 당첨되지 않는다에 걸것입니다. 앞에서 자신이 로또복권을 구매해야하는 여러가지 이유들과는 상관없이 진실의 순간에는 사람이 냉정해 지는것 입니다. 비유가 적절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에 평상시라면 자신이 사치를 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자신이 남들보다 멋지게 보이고 싶은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수없는 본능입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위기의 상황이 닥치기 마련이고 위기의 순간에는 진실의 순간, 즉 진실만을 말해야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냉엄한 현실을 피하고져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진실만을 말해야하는 상황을 강요받는 순간이 오더라도 냉정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현명한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진실만을 말해야하는 순간은 내가족의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에 사치를 부릴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현실은 냉혹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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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인터넷검색

 

제가 안산에있는 회사에 다닐때의 경험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제가 다녔던 안산의 회사는 인쇄회로기판을 국내에 처음생산하기 시작한 회사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잘아는 회사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제가입사한 이유는 그회사가 반도체 패키징라인을 셋업한다고 하여서 필요한 인력을 모집하여서 그곳에 입사를 하게되었습니다. 결국은 패키징라인 셋업은 없었던일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패키징라인 셋업에 투입되었던 엔지니어들은 다른부서로 옮기거나 아니면 회사를 퇴사하고 다른회사로 옮기게 됩니다. 저는 그때당시 딱히 옮길회사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회사에 당분간 버티기로 결심합니다.


회사에서 신규라인 셋업인원이 인원해산과 동시에 다른부서로 옮기게되면 직장생활이 아주 고달파 집니다. 쉽게이해하시면 굴러온돌이기 때문에 박혀있는 돌들이 굴러온돌을 기회가되면 괴롭힙니다. 물론 저도 그러한 굴러온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이 아주괴롭습니다. 거기다가 제의 주요업무는 엔지니어로 기술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일을 하다가 그곳회사에서는 혁신팀이라고 하여서 기술적인것과는 상관없는일을 합니다. 제가하는일은 단순했습니다. 생산라인 돌아다니면서 더러운것 사진찍어서 보고서로 만듭니다. 즉 생산라인에 작업자들에 공공의 적이되는 일을 맡습니다. 정말로 일하기 죽을맛입니다. 저는 사람들과 잘지내고 싶은데 제가 생산라인에 들어가면 작업자들이 "또 뭐찍으러 오셨어요?"라며 비아냥 됩니다.

 

그런데 저도 그것이 저의일인지라 할수없이 사진기 셧터를 열심히 눌러댑니다.
어느날은 저의 또다른 주요업무가 생겨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작업자 교육을 하는데 외부강사의 수발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정말로 죽을맛입니다. 어느정도 수발을 들어줘야 하냐면 그양반에 밥까지 타다가 그양반 앞에다 대령하여야 합니다. 정말로 하는일이 속된말로 더러운 일입니다.


작업자들 교육을 시키기위한 외부강사는 토요타 생산방식에 관련하여 교육을 해주는 강사입니다. 이사람 정말로 거만합니다. 특히 강의첫날이 기억이 납니다. 자신이 쓴책을 사라고 광고를 엄청나게 합니다. 물론 저는 그양반의 책을 구매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양반 수발을 들면서 저를볼때마다 책사라고 하는통에 짜증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대충 다른사람이 가지고있는 그양반의책에 목차를 읽어보니 별것도 없었는데 그것을 저의 피같은 돈으로 구매할 의사가 하나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외부강사의 강의는 저는 싫어도, 좋아도 어쩔수없이 빠지지 않고 들어야 하는상황입니다. 제가 그양반의 수발을 들어야 하기때문 입니다. 그양반이 쉬는시간에 그양반과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양반 돈도잘벌면서 커피한잔 안삽니다. 결국 저의돈으로 그양반 커피까지 사다가 줍니다. 정말로 뭐같은 상황입니다. 거기다 그양반 기독교인 입니다. 저는 교회는 거들떠도 보지않는사람인데 얼굴볼때마다 교회가라고 합니다. 짜증이 밀려옵니다. 나는 내가하고싶은데로 사는데 그사람이 뭐라고 자꾸만 책사라, 교회가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외부강사의 교육은 6개월정도 진행이 됩니다. 정말로 긴시간 입니다. 일주일에 두번인지 세번인지 기억이 나지않지만 그렇게 진행이 됩니다. 그렇게 6개월 진행하면 강의할 내용이 별로없습니다. 사실 그양반의 교육에 첫날정도 이런게 있구나 정도가 눈에들어옵니다. 그이후에는 그회사의 생산라인에 도움이될만한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회사는 그사람에게 계속해서 꽁돈을 쓰고있습니다. 그양반의 스펙은 기술사 자격증 하나있는것이 전부인데 강의료도 장난이 아니게 비쌉니다.


어쨌든 저의 경험으로는 토요타의 생산방식으로 생산라인에 원가절감이 되지않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다시말하면 그회사는 쓸데없는데 돈을 쓰고서 생산라인에 작업자들이 퇴근하고 집에가서 쉬어야할 시간에 교육을 시켜서 생산라인 작업자들 업무효율만 떨어트리고 돈은 돈데로 썼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헛일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하였던 그양반 지금은 무엇을 하고있을까요? 작년에 일이있어서 평일에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위의 양반을 만났습니다. 예전에 위세는 온데간데 없더군요. 그래서 세상사 세옹지마라고 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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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아시아경제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입사한 회사는 외국계 화학회사 였습니다. 그회사 지금도 엄청나게 잘나가는 회사입니다. 특히나 화학계통의 특성상 마진이 아주좋습니다. 마진이 얼마나 남는지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이유도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그회사에 세상물정 모르고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제가 운이좋게 입사를 한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바로위 직장상사도 인상이 아주 좋아보여서 입사를 잘한것 같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재미있게 하고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제가맡은 회사의 업무는 프로세스 엔지니어 업무를 맡고있었습니다. 다시말하면 생산에 관련된 모든업무를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였습니다. 저와같이 그회사에 입사한 친구는 생산쪽 엔지니어로 저보다 업무의 중요도가 조금 떨어지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로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고 열심히 일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것이 저의 사수가(회사에서도 군대용어를 사용합니다.) 저에게 일은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는것 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일을 저혼자 찾아서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는 지난 몇년간 생산한 생산일지를 전부다 모아봅니다. 그리고 그회사의 핵심기술중에 한가지를 통계용 차트로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시도하기 시작한 사람은 그회사에서 유일하게 저만이 그러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어쨌든지 그렇게 핵심기술을 통계용 차트로 만들기 위해서 지난몇년간의 생산일지에 기록된 자료들을 전부다 저의손으로 하나씩 입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자료를 입력하기 시작한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회사에는 현재까지 생산된 제품에대한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하도록 스펙에 못박혀 버렸습니다. 저의 작은 노력이 그회사에 생산시스템을 조금 바꿔놓는 계기가 된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컴퓨터로 입력된 자료들을 가지고 보고서등의 작성에 크나큰 도움을 줬습니다. 물론 회사를다니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나름에 회사에 기여를 하여도 누구하나 잘했다고 칭찬을 하여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회사의 문제점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시도를 합니다. 그것은 그회사가 제품을 납품하고서 불량이 발생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것은 그회사만의 독특한 제품의 특성때문입니다. 그래서 불량이 발생되는 원인을 찾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공정을 조금씩 수정하도록 유도하여 보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의사수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저만의 방식으로 회사에 기여를 하기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합니다.


분명히 회사내에서 저에게 칭찬을 하여주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분명히 신입으로 들어온 제가 조금씩 회사의 분위기를 바꿔나가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즉 회사내에 생산관련하여 시스템의 구축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데 제가 입사하여서 하나씩 뜯어고치고 있었는데도 누구하나 아무말 안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사람들은 저의능력을 인정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의사수도 저를보면서 뿌듯한듯 웃어주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도 안가르쳐 줬는데 혼자서 알아서 잘하는것을 보면서 저의사수는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의사수가 영업부서로 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저는 하나도 배운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제가 입사를 하고서 6개월도 안되서 다른부서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맡은 업무는 앞으로 저혼자 해나가야 합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는 외국계 회사입니다. 그래서 월말이면 월간보고서를 작성하여야 하는데 영어입니다. 저는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정말로 난감하였습니다. 사수는 다른부서로 옮길거면 미리 귀뜸이라도 해주었어야 하는데 무책임하게 자신만 살겠다고 다른부서로 가버렸습니다. 저는 정말로 헐~~ 했습니다.


저의 사수가 다른부서로 가고나자 회사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그중에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씨 끊떨어진 연이네."였습니다. 사실 저는 그회사에 입사하고 끈이라고 잡아본적도 없었습니다. 알려준게 있어야 그것이 끈일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진짜로 직장상사 한명이 없어지니 직장생활이 고달파 지는것은 맞습니다. 정말로 이리치이고 저리치입니다. 뭐하나 하다가도 이놈저놈이 와서 저에게 별에별일을 다시켜서 하던일도 마무리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던일 못했다고 또한번 치이고 말입니다.


그렇게 이곳저곳 치이면서도 저는 저의할일을 밤늦게남아서라도 해내고 맙니다. 그리고 그에관련된 보고서도 힘들게 작성합니다. 거기다가 이쪽계통에 발표용 자료들도 힘들지만 만들어 냅니다. 분명 파워포인트를 가르쳐준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혼자 죽기살기로 혼자공부하면서 발표자료들도 만들어 냈습니다. 그때당시에 만들어놓았던 발표자료는 저희부서에서는 사용하지 않지만 다른 영업부서나 기술지원부서에서 저의자료에 약간의 수정을 하고서 자신들이 만든것처럼 사용을 합니다. 그렇게 저는 그회사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여도 역시나 자신의 사수가 없으면 직장생활은 고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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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한국일보

 

제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던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저의 사회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어서 한번 그때를 생각하면서 저의 생각을 정리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할때는 1999년도 였습니다. 당시는 한참 IMF로 서민들이 고통을 받았던 시절입니다. 저도물론 취업이 안되어서 고생을 하고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힘든시기를 넘길까도 진지하게 고민하던때 였습니다. 사실 대학원에 가게되면 교수님들이 등록금을 대주시고 일정부분의 용돈형식으로 생활이 되는정도의 생활비도 지원을 하여주십니다. 그래서 어차피 IMF때문에 취업하기도 힘든데 대학원에 지원하고 싶은생각이 솔직히 더욱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자주가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희과 게시판에 구인광고가 떴습니다. 그날은 제가 일찍 학교에 와있어서 저밖에 구인광고를 본사람은 없었습니다. 당시는 취업하기가 너무힘들어서 이런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미리작성하여 놓았던 이력서를 구인광고를낸 회사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면접을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면접을 보러갔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는 경리한분과 사장님 딱두사람만이 있는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면접은 아주간단히 치루었고 그날로 합격통보를 받습니다. 그리고는 사장님이 한말씀 하십니다. 일주일정도 이곳에 있다가 당신은 과천으로 6개월정도 출퇴근 할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회사에 출근을 하였습니다. 출근날 저와사장님은 과천에 갔습니다.


도착한곳은 과천에있는 기술표준원이라는 국가연구기관 입니다. 그곳에간 이유는 기술표준원에서 연구개발한 어떠한 기술을 사장님이 사업화를 시키기 위하여 저를 파견보내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싫튼좋튼간에 6개월은 과천으로 출퇴근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박사님에게 인사를 시키러 저를데리고 간것입니다. 제가있어야할 연구실은 무기신소재연구소입니다. 그리고 저를 맡으신 박사님은 남자분이신데 인상이 아주좋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방에 여자박사님도 한분계셨습니다. 또한 박사님을 도와서 연구를 해주는 연구원이 3분이 있었는데 3분이 전부다 여자분이셨습니다. 연배는 당시의 저의연배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신소재연구소에 총인원은 6명이됩니다. 남자박사님 1분, 여자박사님 1분, 저, 여자연구원 3분 이렇게 말입니다. 거기다가 옆방에 작은연구실이 하나있는데 거기도 여자박사님 1분과 여자박사님을 도와주시는 여자연구원 1분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방과 옆방에 연구소와는 아주각별히 잘지내는것 같았습니다.


일단은 전반적인 연구소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거기다가 진짜로 완전히 여성분들에게 둘러싸여서 연구소에 일하러갈맛이 났습니다. 정말로 불평불만없이 연구소에서 일했습니다. 제가 기술을 습득하여야 하는것은 "알루미나"라는 세라믹소재를 미세화시켜서 만들어 내는것 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알루미나로 실리콘 같은것을 갈아내는데 사용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곳 기술표준원(이하 기표원)에 분석장비는 정말로 전국에서 최고가의 분석장비들이 속된말로 널부러져 있습니다. 학교 연구소나 기업의 연구소에서는 구경하기힘든 분석장비들이 자신을 이용하여 분석해줄 연구원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을 조작할 연구원들이 부족하여 놀고있는 분석장비들이 즐비합니다. 그런조건에서 일한다는것은 정말로 행복한 일입니다. 학교에서는 별것도아닌 분석장비 하나가지고 줄서서 분석하여야 하는데 이곳 기표원에는 고가의장비를 가지고 하루종일 분석하고 있어도 누가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열심히 연구한다고 칭찬받습니다. 그래서 기표원으로 출퇴근하는 6개월은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특히나 제가 다뤄야하는 분석장비는 X-RD라는 장비입니다. 요즘은 많이 보급되어 있는것으로 알고있지만 당시에는 구경하기도 쉽지않은 장비입니다. 저는 그장비를 원없이 다뤄봤습니다.


하루는 그날에 실험을 위하여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는데 대학동창의 전화가 왔습니다. 그친구도 어느연구소에 있는친구입니다. 그런데 그친구는 저와는 별로 안친했는데 어떡게 저의연락처를 알아서 전화를 한것입니다. 그리고는 혹시 X-RD라는 장비로 2~3가지정도만 분석할수 있냐는 전화였습니다. 시편은 자신이 만들어서 기표원안에 들어와있다는 것입니다. 헐~~ 막무가내였습니다. 사실 시편 2~3가지정도면 20분안에 끝나는 일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박사님에게 물어보고 말해주겠다고 하고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친구 간단히 분석을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어쨌든 저의 첫사회생활을 하였던곳이 기표원이어서 솔직히 좋았습니다. 원없이 많은 분석장비를 다룰수가 있어서 말입니다. 물론 월급은 모기눈물만큼 받았지만 그보다도 배울수 있는것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기표원이 KS표준을 만드는 곳이다보니 표준에 대해서도 많이알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일하다보면 자신의일만 하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급하면 제가 늦게까지 남아서 박사님업무를 도와드리기도 하여서 표준에관련하여 돌아가는 업무흐름을 파악할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거의다 까먹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기표원에서 일한것이 인정받게 되어서 제대로된 회사를 들어가는데 도움을 받기도 하였고 말입니다. 그곳이 진짜로 제가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된 외국계회사인 반도체용 접착제를 생산하는 회사에 입사하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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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인터넷검색

 

오늘은 불현듯 저의 가장젊고 꽃다운 나이였던 20대 초중반의 기억에 대하여 적어볼까 합니다. 저의 인생에 가장 꽃같았던 20대 초중반에 기억은 군대기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남들보다 공부를 잘못해서 대학을 2년늦게 입학합니다. 그리고 대학을 한학기 다니고나서 바로 군대영장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무더운 1993년 7월 19일에 군대에 입대를 하였습니다.


군대에 입대를 하기전날 정말로 잠한숨 안왔습니다. 어차피 가야하는 군대이긴 하지만 군대라는 낮설은 장소에 가야한다는 부담감에 잠만 안오는것이 아니라 군대에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어찌나 빨리가는지 어느새 아침이 밝습니다. 저는 군대에 부모님과 가는것이 좋은방법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 친구들에게 배웅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여놓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부모님께 큰절을 드리고 "잘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만나서 논산행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신병훈련을 논산에서 받게된것 입니다.


일단은 부모님과 함께가는것 보다는 부담이 덜하기는 하였습니다. 이유는 친구들은 제가 우울해 할까봐 열심히 장난도 쳐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되어서 훈련소에 입소합니다. 입소하는데 부모님이나 일가친척, 친구들이 보이는 곳에서는 걸어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일가친척, 친구들의 시야가 사라진곳으로 가고나서는 조교들의 태도가 돌변하고 바로 오리걸음으로 걸어갑니다.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던것은 논산훈련소는 전반기 군사훈련을 마치고 후반기 교육을 받을사람들이 가는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사람들 보다는 편하게 군생활을 할수있는곳으로 훈련을 받으러 갔기때문입니다.


군대에 입대하고 훈련소에서 정말로 화장실을 1주일이상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이유는 사회에서 먹었던 음식과 다르게 군대에서 먹는음식의 질자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군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제가 몸담았던 군대는 그러하였습니다.


전반기 4주간의 군사훈련은 견딜만 하였습니다. 어차피 몸이 힘들각오를 하고서 입대를 한것이라 나름대로 버틸만하였던것입니다. 그리고 전반기 교육을 모두가 마치고 저는 주특기가 화학병과를 받아서 전라도 광주에 상무대로 가게됩니다. 그곳에서 교육기간은 8주가 됩니다. 저의 병과인 화학도 몇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전부다 기억은 나지가 않아서 생각나는것만 적어보겠습니다. 화학병, 제독병, 작통병 더있는데 기억이 안납니다. 그중에 가장흔한병과가 화학병으로 후반기 교육을 받는 화학병과중에 가장고생하는 병과입니다. 그리고 제가받은 작통병은 작전통제병의 줄임말로 소위말하는 땡보직입니다. 작통병 병과는 1년에 2기수정도밖에 없는데 운좋게 저는 그보직을 받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작통병은 3보이상 승차라는 말이나오는 정말로 땡보직입니다. 그리고 교육도 몸으로 뛰는것은 거의하지 않았고 책상에 앉아서 책만보는 보직입니다.


그렇게 후반기교육을 받고서 자대배치를 받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저와같이 교육을 받았던 친구들은 전부가 군용짚차로 데리고 가는데 저는 일반열차로 이동을 합니다. 그리고 강원도에 102보충대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금 자대로 보내졌습니다. 분명 저는 땡보직의 교육을 받고왔는데 강원도 철원에 일반 보병부대로 보내집니다. 믿고싶지않은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이제갖 이등병 계급장을단 제가 이상하다고 물어볼수도 없는노릇 입니다.


결국 저의 군생활은 강원도 철원에서 일반 보병으로 군생활을 마쳤습니다. 그것도 남들이 경험하기 쉽지않다는 철책근무도 서보고 말입니다. 자대에 처음갔을때는 8주동안의 후반기교육이 저의 군생활에 도움이 하나도 안되고 오히려 고참들의 괘롭힘에 빌미가 됩니다. 이유는 8주간 잘놀다가 이제야 자대에 왔다는 이유입니다. 저는 저나름에 억울한데 말입니다. 분명히 3보이상 승차를하는 보직에 교육을 받았는데 보병이라니요. 정말로 억울했지만 억울함을 호소할곳도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의군생활 26개월을 꽉꽉채우고 1995년 9월 21일에 제대를 하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26개월 하고도 2일더 군생활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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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본인의 운전면허증, 직접촬영

 

이번글은 저의 칠전팔기의 운전면허 도전에 대하여 글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운전면허증은 저의 운전면허증 입니다. 문제가 될만한것은 가려놓았습니다. 그렇다고 사진까지 가려버리면 사진올리는 의미가 없어질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서 저의 얼굴을 공개해 봅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촬영하여 올리는 최초의 사진 같습니다. 물론 저는 디지털 카메라가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올리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저의 칠전팔기의 운전면허 도전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유는 저의 운전면허 도전기가 저혼자만 알고있기에는 너무나 고생을 많이하여서 말입니다. 저는 뭐하나 이루기 위해서 시작하면 정말로 저의 인생이 그런건지 고생고생해서 한가지를 겨우 이루어 냅니다. 그중에 운전면허증을 따는일도 그랬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다른사람보다 2년정도 늦은나이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시도한것이 운전면허증을 따는것 이었습니다. 이유는 조만간 군대를 갈것이니 군대를 가게되면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운전병으로 빠질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준비합니다. 준비는 운전면허 문제집을 구입하는것으로 준비는 끝났습니다. 즉 책한자 안보고 시험을 보러간 것입니다. 정말 무모했습니다. 그리고는 그해여름 군대를 갔습니다.


제대후 바로 운전면허증 따는일을 시도합니다. 군대가기전에 사다놓은 문제집의 본전은 뽑고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필기는 어렵지않게 붙었습니다. 당시에 실기는 굴절, S자, T자 이렇게만 하면 되는것이 실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원갈돈은 없고하여서 저희형에게 운전연습을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저희형이 당시는 성남에 공군비행장에 근무하였는데 그곳에 위의 굴절, S자, T자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열심히 연습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보러갔습니다. 그리고 저의차례가 되어서 출발을 시도하는데 차가 않좋은지 자꾸만 시동이 꺼지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당황하고 있는데, 출발선에서 출발을 도와주시는분이 저에게 "사이드 안풀고 출발하시나요?"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말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저희형과 연습할때는 형이 핸드브레이크라고 명명했던것이 사이드였습니다. 그리고 형과연습할때는 사이드를 형이 미리미리 내려줘서 그것은 신경쓰지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출발도 못하고 떨어졌습니다.


그이후 한동안 운전면허증 따는일은 포기하다가 대학 4학년이 되어서 다시금 운전면허증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이유는 사회에 나가서는 사회생활이 바쁠것이라 면허는 미리미리 따는것이 좋을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필기시험은 쉽게 붙었습니다. 그리고 실기를 보는데 일전의 굴절, S자, T자 시험이 아니라 요즘의 연속적으로 지나가는 시험으로 바뀐지 얼마안되던때입니다. 그래서 학원비가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대신 요즘에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운전연습 시뮬레이터가 유행하던때 입니다. 전자오락처럼 화면이 나오고 운전코스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렴하게 그것으로 실기에 도전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시뮬레이터를 타보니 이건뭐 도움이 하나도 안됩니다. 결국 마음을 바꾸기로 합니다. 실기시험을 10번정도 볼생각으로 시험보러가서 운전연습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언덕 -> 굴절 -> S자 -> T자 -> T자 -> T자 -> 가속 -> 언덕 -> 주차 -> 실기합격 이렇게 정말로 10번째에 실기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학원도 안다니고 말입니다. 여기서 위의 언덕, 굴절,S자 등등은 제가 떨어진 위치를 적어놓은 것입니다. 어쨌든 운전면허시험 학원비를 절약하게 됩니다.


이제는 도로주행 입니다. 도로주행도 학원비를 절약하기로 결정합니다. 실기도 학원비를 절약하고 성공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도로주행은 실패를 하고말았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왔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시금 운전면허증을 따기위해 준비를 합니다. 회사업무에 영향을 주지않는 기간을 이용하면 좋을것 같았습니다. 결국 여름휴가기간에 단기속성으로 면허를 따기로 결정합니다. 일단 필기는 붙여놓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단기속성 학원에 등록을 합니다. 빠르면 실기를 하루만에 딸수가 있습니다. 일단 새벽같이 모이는 장소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학원의 버스를 타고서 한참을 들어갑니다. 그곳은 산을 깎아서 운전연습을 하도록 만들어 놓은곳 이었습니다. 그곳에서 2인 1조로 교대교대로 실기연습을 합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탄 그친구가 저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자신이 오후에 시험인데 잘안된다고 말입니다. 결국 오전은 그친구에게 타는것 모두를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3번정도만 돌았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마쳤습니다.


다음날 모임장소에 갔습니다. 그날은 실기시험날입니다. 저는 실기연습 3번한게 전부였습니다. 시험장소는 강원도의 어느어느 면허시험장입니다. 30~50명 정도가 시험보러갔는데 제순서가 3번째 입니다. 그렇게 실기를 봤고 제가 그학원에 실기시험 처음 합격자가 됩니다. 앞에 두분다 떨어졌습니다. 역시 매도 일찍맞는게 났다고 마음편하게 다른사람들 시험보는것 지켜볼수가 있었습니다.


도로주행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운전면허학원의 힘을 절감하여서 퇴근후 도로주행 할수있는 학원에 찾아가서 등록하고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옆에앉은 강사분이 말씀하시기에 운전을 아주잘한다는것 입니다. 그러면서 도로주행 코스 몇번만 돌리더니 그다음부터는 계속해서 도로로 나가도록 시키십니다. 저는 무서워 죽겠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덕분에 저는 운전실력이 빨리늘었습니다. 물론 도로주행은 쉽게 붙었습니다. 정말로 저는 뭐하나 이루는데 이렇게 고생고생 하면서 이루어 갑니다. 저의 운전면허증 취득이야기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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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사회복지정보원카페(cafe.daum.net/cswcamp)

 

우리의 삶에서 사회에 봉사를 하면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을 하시는분들이 계실것 입니다. 즉 다시말하면 손쉽게 사회에 봉사를 하면서 살고싶은 분들이 생각보다는 많으실 것입니다. 거창하게 경로당이나 어린이 보호시설, 또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계신 분들을 찾아가서 밥도 퍼드리고 이불이나 옷가지등을 빨아드리는 봉사를 하지않고도 쉽게 사회에 봉사를 할수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떡게하면 손쉽게 사회에 구성원으로써 사회에 봉사를 할수가 있는것일까요?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냥 자신이 주업으로하는일에 최선을 다하시면 그것이 사회에 일원으로써 자신이 사회에 봉사를 하는것 입니다. 너무나 간단하다구요? 그것은 자신이 하는일을 너무나 쉽고 별볼일 없다고 치부해 버려서 그런것 입니다. 분명히 자신이 하고있는 일은 사회에 도움을 주고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시고계신 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일단 제가하는일로 쉽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산업용 접착제를 유통하는 사람입니다. 분명하게 제조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유통만 하는것 입니다. 그러면 업체분들이 제품이 필요하여 저에게 연락을 주십니다. 저는 그러한 분들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저의 지식을 그분들에게 나누어 드립니다. 지식은 사용한다고 없어지는것이 아닙니다. 아낄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지식을 마구마구 퍼드립니다. 그러면 그러한 지식을 전달받은분은 거기에대한 지식이 생겨납니다. 지식만 생겨나는것이 아닙니다. 제가하는일의 특징은 대부분 신규 생산라인 설치의 시작점에 있습니다. 즉 신규로 그회사의 다음 먹거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가하는일이 필요해 집니다. 그렇게 뵙고나면 다음에 저를찾는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걸립니다. 다음에 저를 찾게된다면 그때는 신규생산라인을 건설하는 중간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업무가 걸리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1년정도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저는 사회에 봉사를 한것입니다. 이유는 그회사의 다음먹거리에 엄청난 공헌을 하여주었고 그회사가 알지못하는 저의 지식을 저를통하여 습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회사는 발전을 합니다. 이러한일이 계속하여 반복되면 저는 많은회사에 발전에 공헌을 하게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회사들이 많아진다면 그러한 회사들은 많은돈을 벌게되고 그만큼 많은 세금을 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풍부해진 세금으로 국민들의 복지기금으로 운용할 자금들이 많아지는것 입니다. 그러면 원점으로 돌아가보면 저는 어느회사를 부자로 만드는데 공헌을 하여서 그회사가 세금을 많이 낼것이며 그만큼 나라를 부자로 만들어 줄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저의일을 열심히 함으로 인하여 사회에 크나큰 공헌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한가지더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시는 분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직업에는 분명히 귀천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들도 사회에 봉사하시는것 맞습니다. 특히나 점심시간에 음식을 나르시는것은 자신의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에게 영양을 보충하실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나르는 음식을 드시고 열심히 일할수 있도록 기초영양을 제공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또한 사회에 봉사를 하시는것 맞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나르시는 분들도 자신의일을 챙피해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들이 하찮게 보건말건 자신이 당당하면 됩니다. 그리고 충분히 사회에 일원으로써 봉사를 하시는것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글을 읽고계신 분들은 자신이 하는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고 그일이 사회에 어떡게 긍정적으로 돌아가게 하는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이라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여서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잘생각해보면 사회에 봉사하는일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습니다. 때되면 나와서 매스컴 앞에서 밥을 퍼주는 정치인들보다 자신의일을 열심히 하시는분들이 더욱더 사회에 이바지하고 사회에 이롭게 하는일을 하시고 계신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시면 사회에 봉사하는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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