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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뉴시스

 

오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국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는 국민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생활 할수 있도록 노력 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것 입니다. 그래서 그나라 안에 국민들이 편안하게 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이 너무 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편안하게 생활을 하는 국민들 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아 진다면 그나라는 분명히 좋은 나라이며, 부강한 나라일 것입니다. 이유는 국민들이 편안하다고 느낀다면 그에 대하여 고마움이 생겨서 국가의 구성원으로써 더욱더 노력을 할것 이기 때문에 그나라는 계속해서 발전하게 되는것 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이야기를 우리나라에 가져와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국가에는 그나라의 권력이나 힘을 운영하는 정부가 있습니다. 정부가 국가 안의 거의 모든 힘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라면 그것은 좋은 정부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다시 돌려서 말한다면 선거 기간에 선거를 하여서 그나라의 정부를 운영할 사람을 뽑는 것이고, 이것은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적 이상과도 맞아 떨어집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선거에 많이 참여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투표를 안하면서 쿨한척 하는 사람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맞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현정부와 전정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정부인 이명박정부 시절에 국가적인 대형 재난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천안함 침몰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당시 배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쌩떼 같은 군인들이 전부 몰살 하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인재가 됩니다. 그리고 정부가 이명박정부에서 박근혜정부로 바뀌고 나서 생겨난 인재가 있는데, 최근의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수학여행을 가던 생떼 같은 고등학생들이 몰살 당하는 안타까운 재난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만히 지켜보면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사건의 진행이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군인에서 고등학생으로 바뀐것 이외에는 너무도 비슷한 사건 진행을 보이고, 한명도 구출을 하지 못한것도 닮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최근의 세월호 사건때 한명도 구해지지 못할것 이라는것 알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정부를 전혀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정부인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로 전혀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에 천안함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군인들이 한명도 구출되지 못할것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정말로 한명도 구출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정말로 마음 한구석이 먹먹 한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최근에 세월호 사건도 결국 선박회사와 선박회사 직원들이 감옥 가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가 될것도 잘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러한 재난에 가장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는 다름이 아니라 국가인데 말입니다. 더욱더 정확히 말한다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것 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부는 전혀 책임질 생각이 없는것 잘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직무유기를 하는 정부를 신뢰하라는 말을 하여봤자 저는 전혀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이 해야할 국가의 국민을 구하는 일을 외면해 버리는 정부를 신뢰해 달라고 해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자국민을 구해줄 의무를 외면한 정부라는 말입니다.

 

국가의 국민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라나라의 남자들은 군대를 가서 국가를 지키는 의무도 부여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러한 국가의 요구에 대하여 대부분 의무를 다하게 됩니다. 이유는 다른것 아닙니다. 국가가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그것에 구해줄것 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국가에 해줘야하는 납세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와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들 간에도 이러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을때 그국가는 살만한 국가가 되는것 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 정부는 그러한 신뢰를 저에게는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야기에 공감을 안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것 입니다. 그러나 모든것은 냉정하게 보아야 하는 것이고, 정말로 선거날 자신에게 도움을줄 사람을 찍어야 하는것 입니다. 자신의 선거권이 별거 아닌것 같아 보여도 그러한 한표가 모여서 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 등등을 선출하게 되는것 입니다. 그리고 운이 없어서 자신이나 자신의 자식들 중에서 천안함이나 세월호에 타고있지 말라는 법은 없는것 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한 크나큰 인재가 발생할 확률은 대단히 높고, 자신이 그러한 대형 인재에 안전하다고 장담할수가 없으니 제발 투포좀 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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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국민일보

 

요즘은 개인용 휴대전화기를 거의가 한대씩은 가지고 생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휴대전화기를 두대이상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업무와 관련성이 있어서 이렇게 휴대전화기를 두대이상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도 휴대전화를 두대정도 보유하였던 시절도 있습니다. 이유는 회사에서 휴대전화를 사줘서 한대를 가지고있고, 기존에 개인적인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두대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시절에는 휴대전화기를 초등학생들도 가지고 다니는것을 보니 정말로 휴대전화 보급이 많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전국민이 한대 이상의 휴대전화를 보유한 이러한 시절에 영업을 다니는 영업사원은 휴대전화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까요? 아마도 영업을 다니는 영업사원은 휴대전화가 분명히 군인이 가지고있는 총과같은 의미라고 생각이 됩니다. 고객의 전화를 받아야하고, 고객과 약속을 잡는데 있어서 휴대전화만큼 편리한 기기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영업사원의 영업도구의 일순위를 꼽으라고 한다면 분명히 휴대전화가 맞습니다. 그만큼 휴대전화는 영업사원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의 일순위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휴대전화가 없었던 시절에는 영업을 다니는 사람들은 어떡게 영업을 하였을까요? 솔직히 저는 휴대전화가 없을때 영업에 입문하지 않아서 어떡게 영업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현재는 영업쪽에 종사를 하고있고, 휴대전화가 없던시절 영업사원이 어떡게 영업을 다녔는지 모르고, 알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알고싶지도 않습니다. 이유는 영업사원 = 휴대전화가 저의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휴대전화가 없던시절 영업직이 어떡게 영업을 하러 다녔는지 모르고, 정말로 어떡게 영업을 다녔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만큼 영업직에게 휴대전화는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전에 생각해보면 휴대전화가 비싸서 일부의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시에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녔던 사람들이 아마도 영업직에 몸담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 그리고 당시에 휴대전화 비용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비용에 비하여 어마어마하게 비쌌던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도 물건을 팔러 다니려면 그정도 비용은 회사에서도 감내해야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싸도 영업직들 에게는 휴대전화를 사주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 그리고 그이전에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이유는 위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영업사원 = 휴대전화 이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영업직들은 어떡게 영업을 하였을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단 회사에서 영업할 업체에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약속시간을 잡고, 업체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업체에 들어가기전에 공중전화를 찾아서 다시한번 약속시간을 확인하여 담당자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공중전화 부스가 어디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화를 하여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약속한 회사와 공중전화 부스가 가까우면 다행이지만 멀리 있다면 그또한 영업사원은 불편함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 담당자와 통화하기 위해서도 여러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하는 불편함도 감내를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담당자가 출장을 가게되는 경우는 그날의 영업이 헛탕이 되는 불편함도 감수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휴대전화기가 없던 시절의 영업사원은 정말로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영업을 다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만큼 영업사원에게 있어서 휴대전화 = 영업사원으로 생각하는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이 휴대전화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시절에 영업을 다니는것에 대하여 영업사원들은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면서 영업을 다니는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저도 영업을 하면서 요즘같이 세상에 휴대전화가 개인당 하나씩 가지고있는 시절에 영업을 시작한것에 대하여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업을 다닐때 헛탕을 덜칠수 있도록 도와준 휴대전화의 존재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영업을 다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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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인터넷검색

 

저의 꽃다운 나이인 20대 초반에 있었던 창피하였던 이야기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창피했던 일을 기록하는것은 여간해서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저의글을 보고서 비웃지 마시고 창피함을 무릅쓴 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시면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이유는 사람은 누구라도 남들에게 잘보이고 싶어하지 절대로 자신이 실수한것을 떠드는 사람은 별로없기 때문이고, 저는 그러한 창피한일을 공개하니 저의 그러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시는것이 맞습니다.

 

저의 꽃다운 나이인 20대 초반에 군대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할 참입니다. 이것도 저의 인생에서 생겨났던 일이니 기록해 놓는것이 좋을듯 싶습니다. 저는 군생활을 강원도 철원에 최전방에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물론 철책근무도 섰습니다. 그리고 철책근무가 끝나고 다시금 일반 군인으로 훈련을 받았을때의 일을 기록하는것 입니다.

 

강원도에 군부대가 있는곳에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그곳은 도시와는 완전히 다르게 해가지면 정말로 깜깜합니다. 특히 달이 없는날은 정말로 바로앞에 사람이 다가와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알수가 없을만큼 깜깜합니다. 도시는 길중간에 가로등도 있기 때문에 밤에도 낮보다는 못하지만 생활을 할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군부대 근방에는 가로등 자체가 없어서 정말로 깜깜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로인하여 골탕먹은적도 많이있습니다. 특히 사람들끼리 부딪치는것은 일도 아닐정도 입니다.

 

어쨌든, 그날은 야간사격이 있는날입니다. 저는 당시에 병장을 달고 있어서 군생활이 편안할때 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야간사격은 과녁을 놓고서 하는것이 아니라 호안에서 야간사격이 있었던 날입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잘아시듯이 사격을 하고나서 탄피를 챙겨야 합니다. 사격한 총알의 숫자와 탄피의 숫자가 정확히 맞아야 그날의 일정이 전부다 종료가 됩니다. 그래서 사격을 하면서도 탄피를 잊어버리지 않기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래서 사격하여도 사격에만 집중할수가 없습니다. 혹시나 탄피를 잊어버리면 모든사격은 중지되고 잊어버린 탄피를 찾기위하여 전 부대원이 그부근을 이잡듯이 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탄피를 잊어버리면 안되는 이유는 도대체 어째서 그럴까요? 저는 그에대해서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날의 야간사격에서 결국은 저의 후임병 누군가가 탄피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서두에 말씀을 드렸듯이 강원도에 군부대 근방은 깜깜합니다. 특히나 야간사격을 시행한날은 달이 떠있지 않아서 정말로 깜깜 했었는데 탄피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정말로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빠른시간안에 탄피를 찾지 못하면 내무반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밤새워 탄피를 찾아야 할것으로 생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러한 상황이 오지않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잊어버린 탄피를 찾기 시작합니다.

 

깜깜한 밤에 저의눈에서 레이져가 나갈정도로 열심히 탄피를 찾았습니다. 이유는 밤새워 탄피를 찾고서 아침에 내무반에 복귀하는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밤새워 탄피를 찾느라 정말로 밤을 새웠다고 다음날 일정이 없어지는것도 아니라서 더욱더 열심히 찾았습니다. 물론 다른 부대원들도 저와 같은생각인듯 싶었습니다. 다들 열심히 이잡듯이 탄피를 찾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탄피를 찾는데 어두운 어느곳에 빤짝 빛이나는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탄피를 찾았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좋아서 “탄피다.”를 외치며 그것을 집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이 미끈 거립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누군가가 뱄어낸 가래였습니다. 제가 “탄피다.”를 외칠때 많은 부대원들이 저의 주위로 모였고, 그것이 가래임을 알고서 저는 저의 동기들에게 한동안 가래로 통하는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그날밤 누군가가 탄피를 찾아서 결국은 아무문제 없이 내무반으로 복귀를 하였고, 위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저의 동기들은 저를 가래로 부르기 시작하였고, 후임병들도 저를보면서 웃음기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글을 쓰면서 그때의 기억을 되집어보니 얼굴이 화끈거리게 됩니다. 그래도 이글을 보시면서 재미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큰용기를 내어서 작성한 글이지만 그로인하여 누군가는 즐거움을 얻으시면 그것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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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촌에서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곳의 시작점은 어디가 있을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름하여 전세계의 화약고가 어디인지를 생각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전세계의 화약고는 일전에 말씀을 드렸던 중동지역이 전세계 화약고의 한축입니다. 이유는 미국의 세계패권이 걸려있는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에대한 글은 링크로 걸어놓도록 하겠습니다. 링크 : 우리생활에 필수인 돈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또다른 전세계의 화약고는 어디가 있을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한반도 입니다. 이곳이 전세계의 최고의 화약고 입니다. 저희 한반도에서는 오늘당장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전혀이상하지 않을만큼의 전세계 최고의 화약고 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북이 갈라져 있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북과 미국은 서류상으로 정전협정을 맺어놓고 있습니다.


정전협정은 다른것 아닙니다. 전쟁을 잠시동안 쉬고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북이나 미국중에 어느한나라가 방아쇠를 당기면 바로전쟁입니다. 우리는 별생각없이 살고있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실상은 매일매일이 전쟁의 위험을 안고서 살아가는것이 정확한 정세의 이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가 군대를 입대한게 1993년입니다. 근무는 강원도 철원에서 군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94년 여름에 갑자기 비상이 걸립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훈련입니다.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전쟁이 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도 억울하였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방에 군인들은 총알받이가 되는것 이었습니다. 여자친구 한번도 사귀어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억울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훈련을 받다가 어느날 훈련이 없습니다. 전쟁분위기가 사라진 것입니다. 저는 저의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너무나도 젊은나이에 죽는것이 억울했는데 아직은 죽지않게 되는것이 다행이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저는 군대에 있을때 전쟁의 위험이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것저것 공부를 하다가 보니가 제가 군대에 있을때 국제정세의 자료들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당시 정말로 전쟁이 일어날뻔한것 맞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것 입니다. 이유는 미국이 북을 쳐들어가기위하여 전쟁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리며 한반도를 긴장상황으로 몰고갔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미국에서 남쪽에 전쟁무기들을 잔뜩 가져다 놓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미국은 경악을 하면서 전쟁을 선택하지 못하고 땅콩장수 카터를 북에 급파하여 전쟁상황을 모면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상황은 어떨까요? 당시에도 전쟁을 선택하지 못하였던 미국은 현재는 더욱더 전쟁을 선택할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북에는 핵무기가 존재할 것입니다. 언론에서는 미국에게 유리하도록 핵보유국 인정을 안하고 있지만 그런다고 가지고있는 핵무기가 없어지는것 아닙니다. 미국은 그런나라 입니다.


미국은 구소련과도 전쟁을 선택하지 못하고 CIA등 첩보전으로 구소련을 해체시켰던 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핵무기를 보유한 중국과도 마찬가지로 전쟁을 선택하지 못하고 소위 핑퐁외교라고 불리는 외교로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합니다. 그렇다면 핵무기를 보유한 북과는 어떠한 선택을 하게될까요? 아마도 비슷한 선택을 하지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이 정확한 국제정세입니다.


그렇다면 저희같은 일반시민은 세상이 바뀌면 어떠한 행동을 하여야 할까요? 저의생각을 말씀드리면 하시던일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하시지 않는것이 좋습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도록 강요를 한다면 판단유보를 하시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오늘글은 너무 직접적으로 쓴감이 없지않습니다. 아마도 이글을 보시는 분들의 이의제기가 있을것 같지만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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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

 

저의 군생활에서 잊지못할 한가지의 추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최전방근무를 섰었던 기억을 들수가 있겠습니다. 제가 근무하였던 부대는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부대입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일단은 소위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같이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들어온 사람은 한소대에 정말로 몇명 되지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군대에 있을때 저는 저희소대에 가방끈중에 한명이었습니다. 뭐 그정도로 전방에 들어와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힘없고 빽없는 평범한 집안의 자식들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제가있던 부대도 철책근무를 합니다. 한개의 연대에는 4개의 대대가 있고, 그 4개의 대대가 6개월씩 돌아가면서 철책근무를 합니다. 그래서 2년중에 1년반은 평범한 군인으로 훈련을 받고 나머지 6개월은 철책에서 근무만을 전문으로 복무를 합니다. 철책에서 근무를 하게되면 좋은점은 군대의 간부들에게 간섭을 거의받지않고 잠도많이 잘수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음식은 철책근무부대가 가장좋은것만 먹습니다. 그리고 음식의질도 철책근무자들이 좋습니다. 단점으로는 생각이 나지않습니다. 솔직히 저는 철책근무가 좋았었으니 단점이 생각이 안나는게 당연할수가 있습니다. 이유는 제가 군대의 고참이 되어서 철책근무를 섰기때문에 철책근무가 좋았습니다. 만일에 철책근무를 후임병으로 들어갔다면 철책근무가 무지무지 싫었을 것입니다.


철책근무를 서게되면 여기저기서 파견이나 혹은 교육으로 외부에 부대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참고로 제가 철책근무를 할때는 겨울이었습니다. 특히나 학군단 사람들도 겨울방학을 맞아서 군대집체교육을 하는과정에 철책근무 체험을 하는것이있나봅니다. 그래서 학군단 사람들도 철책근무에 저와같이 투입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육군사관학교 학생들도 철책근무를 체험하러 와서 저와같이 근무를 같이서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날은 특전사에 지원한 사람들이 철책근무를 서보러 저희부대에 파견나왔습니다. 기간은 2박3일 일정이랍니다. 제가 근무를 서야하는 구간은 산을 2개넘는 구간이 제가근무를 서야하는 구간입니다. 두개의 산사이에 초소는 4개가 있고 4개조가 초소를 바꿔가면서 근무를 섭니다. 그렇게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저의 부사수와함께 특전사 지원자 한명과같이 처음근무지로 이동합니다. 거기서 저는 특전사지원자와 이것저것 이야기 나눕니다. 철책근무시간은 대략 4~5시간이라 근무시간이 지루합니다. 그래서 부사수와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떼우는데 그날은 특전사지원자분이 계셔서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특전사 지원자분 자신들이 정말로 힘들고 멋진군인 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합니다. 저는 그분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드립니다. 그랬더니 그분 더욱더 으시대며 자신이 대단하다고 끊임없이 자랑을 합니다. 저는 들어드리기만 하지않고 맞장구까지 쳐드립니다. 그러면서 "특전사 대단해요"라며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워드립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가고있습니다. 그리고 저쪽에서 우리초소로 오는소리가 들립니다. 같은시간대 근무자가 자신들의 초소에서 우리초소로 바꿔근무하기 위하여 오는소리 입니다. 이제 초소를 바꿔야하는 순간입니다.


이번에 초소이동은 가장끝에서 반대편 가장끝까지 이동해야 합니다. 즉 산두개를 담방에 넘어가서 끝에서 끝에있는 초소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사실 저희들 철책근무자들은 외부에서 철책체험을 하기위해 오는경우 대부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리고나서 마지막에 초소끝에서 초소끝까지 가는구간에서 외부손님에게 골탕을 먹입니다. 그러면 외부손님은 그이후에 순한양이 됩니다. 저도 지금 특전사 지원자에게 그럴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체력이 바닥이지만 제가 군대에 있을때는 체력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끝에있는 초소로 번개같이 이동합니다. 산을 두개를 넘는 힘든일이지만 저같은 경우에는 그곳이 이골날만큼 많이 다녔던 곳이라 별로 힘들지가 습니다. 평상시 끝에서 끝초소까지 가는데는 25분에서 30분정도 걸립니다. 그날 제가 주파한 시간은 12분이었습니다. 그 특전사 지원자가 겨우겨우 따라올라옵니다. 그러면서 헉헉거립니다. 저는 반대초소로 들어가서 숨한번 크게쉬고 아무렇지 않은듯 근무를 서기 시작 합니다.

 

그 특전사 지원자 어떡게 되었을까요? 저의눈을 마주치지도 못합니다. 자신이 앞에 초소에서 이야기 했던것이 창피한 모양이었습니다. 그이후에 근무시간동안 순한양이된 특전사 지원자는 그곳에 철수해서 나갈때 저의손을 잡아주며 "군생활 열심히 하십시요. 저도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해주고 그곳에서 철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생각이 나서 그분에대한 기록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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