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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인터넷검색

 

제가 제목을 달아놓은 상업적인 목적의 공간에는 물건을 판매하는 시장이나, 마트도 포함되지만 회사의 업무를 보는 사무실도 포함이 된다는 것을 서두에 알려드리면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멋진 사무실을 얻을예정이니 사무실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회사를 상대하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방문요청을 하게되면 그회사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담당자가 오는동안 방문자가 기다리는 곳에서 담당자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렇게 담당자를 기다리는 동안에 저는 절대로 멍때리고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시간동안에 저는 무엇을 하고있을까요? 일단 담당자를 만나러 가는동안 담당자와 이야기할것들에 대하여 정리를 해놓기 때문에 담당자를 기다리는 동안에 담당자와 이야기할 준비를 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담당자를 만나기위하여 기다리는 시간동안 하는일은 그곳에 공간배치등을 유심히 보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공간들이 보이면 저의 머리속에서 이것저것 가구들을 옮겨봅니다. 그리고는 최적의 공간이 나올수 있도록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것저것 해보면 시간도 금방 지나갑니다. 담당자를 기다리면서 그냥 멍때리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다보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집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만지는 동안에 초면의 담당자와의 만남은 저의 인상을 좋지않게 할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담당자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절대로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회사들을 많이 다니다보니 발견되는것이 회사들의 공간활용도는 생각보다 좋지 않음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분명히 조금만 신경쓰면 공간을 훌륭하게 활용할수 있을텐데 그러한 작업에 소홀한것 같습니다. 공간은 사람이 활동하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활동할 사람의 기준을 맞춰서 가구등을 배치하고,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하여야 하는것인데 쓸데없는 곳에 가구등을 배치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회사는 사무공간이 필요하면 그러한 사무공간을 구매를 하거나 아니면 월세를 지불하면서 사무공간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계속해서 돈이 지불되는 것입니다. 사무공간을 구매하여도 세금은 낼것이고, 월세로 빌려서 사용하면 당연히 한달에 어느정도의 임대비를 내는것입니다. 그래서 공간이 돈인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돈을내고 사용하는 공간들의 활용을 극대화 시키는것이 중요합니다. 이유는 돈을내고 공간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사무공간을 사용할때는 프린터의 출력과 출력자간의 거리도 계산하여 최단거리를 유지하도록 프린터를 배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끼리 부딪쳐서 서로간에 업무에 방해를 주지않도록 적정의 거리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나도 멀리 가구를 배치하게되면 그것은 돈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적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회사를 가게되더라도 그곳에 공간배치는 눈여겨 보게됩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멋진 공간배치를 보게되는 경우도 생기고, 그것을 사진을 찍던지 아니면 메모하여 저의 앞으로의 사무공간에 적용할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멋진 사무공간을 보게되는 경우는 그곳이 전부가 멋지게 가구들을 배치한 경우가 아니라 그렇게 배치된 공간중에 일부가 제가 앞으로 얻게될 사무실에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사무실에 일부의 공간배치가 저에게 앞으로의 사무실 배치에 좋은 영감을 주어서 그것을 앞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회사에 다니면서도 저의 본업이외에도 이렇게 이익을 얻으며 업체를 방문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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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서울경제

 

지금으로부터 20년정도 전에일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18년 정도가 된것같습니다. 당시에 군대를 제대하고 바로 복학을 하여서 복학생의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어서 그런지 친구들과 술자리를 자주 갖게됩니다.


당시에 저는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들어가야할지 아니면 없는돈을 모아서 어떡게든 사업을 시작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상황에서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저의 그러한 고민들을 이야기할 출구였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고민해서 생각해낸것에 대하여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한참동안 고민하여 생각해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식혜와 수정과가 되겠습니다. 당시에 식혜와 수정과가 지금처럼 제품화 되어서 나오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식혜나 수정과를 먹고싶으면 집에서 담가서 먹어야 하였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식혜나 수정과를 제품화 시키면 어떨까?"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물론 술자리에서 말입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그것은 말도안된다고 이야기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상품성이 있으면 벌써 제품화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생각해낸것이 있는데 그것은 캔커피였습니다. 캔커피도 당시에는 시중에 없는물품입니다. 커피도 집에서 타먹던 시절이라 캔커피는 시중에 아예 없었습니다. 집에서 커피를 타먹을때 얼음을 넣어서 냉커피를 만들어 먹기는 하였지만 시중에서 쉽게 커피를 사먹을수는 없었던 시절입니다. 물론 저는 시원하게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내먹는 방법이 좋을것 같다는 생각정도는 하였습니다.


위제품중에 가장먼저 출시된것이 캔커피 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서 몇달도 되지않아서 캔커피가 출시되었습니다. 지금에서야 흔한 제품이었지만 당시는 획기적인 상품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서 일년정도 있다가 출시된것이 식혜와 수정과입니다. 그리고 식혜는 출시되고 일년도 되지않아서 히트상품이 됩니다. 저는 당시에 그러한 제품들을 만들능력이 안되어서 포기하였던 것인데 제품화되어서 히트상품까지 되니 속이 조금 쓰렸습니다.


사실 캔커피는 곁다리 제품이었고 진짜로 해보고 싶었던것이 식혜와 수정과 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제품을 생산해줄 대기업을 찾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저의나이가 너무나도 어려서 상대방이 상대를 안해주거나 아니면 저를 이용해먹기만 할까봐 시도도 못해보았습니다.


당시에 식혜와 수정과를 대기업 사람과 만나서 사업화준비를 하였다면 어떡게 되었을까요? 어떡게 되었을지는 잘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거의가 제가 털리고 끝이났을 확률이 높습니다. 제가 어리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사회생활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저에게 불리한 계약을 할때에 어떡게 대처하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위에서 이야기 하였던 식혜나 수정과 같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어떨까요? 지금은 확실하게 성공할수있고 대기업과의 계약에서도 절대로 불합리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도 때가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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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인터넷검색 및 본인의 편집

 

직장을 다니다보면 퇴근이후에 직장동료들과 회식을 하는경우가 발생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회식이 회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다니는 회사에 애정이 없는 사람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회식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나름에 다니는 회사에서 성공하고 싶은사람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회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째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회식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할까요? 그것은 회사업무의 연장선으로 보고있기 때문에 회식이 중요한것입니다. 거기다가 회식을 하게되면 업무상에 딱딱한 관계가 아니라 같이 음식을 먹는 즐거운 자리이기 때문에 그러한 회식을 잘활용하면 회사업무에 도움을 줄수가 있는것입니다. 특히나 사람들은 자신이 음식을 먹게되어서 포만감을 느끼면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 지기때문에 업무상에 있었던 짜증나는 것들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너그러워져 얽힌 실타래를 풀수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식을 하게되면 직원들이 업무상 느꼈을 스트레스에 대하여 들어줄 기회도 제공이 됩니다. 이유는 회식에는 대부분 술이 제공되기 때문에 술한잔 마시고나면 없었던 용기도 생겨나게 되어서 자신의앞에 무서운 직장상사나 아니면 회사의 사장이 있어도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게되는 용기를 주게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어느정도 술에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라서 회식때 하였던 작은실수 정도는 모른척 눈감아 줄수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회사원들도 이러한 기회를 잘살리는것도 좋습니다. 물론 회사입장에서도 형식적으로 하는이야기 보다는 그렇게 가식적이지 않은 진솔한 이야기들을 회사경영에 반영한다면 직원들이 조금더 생활하기 좋은회사로 만들수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회식을 하게되면 대부분 시작은 삼겹살에 소주한잔으로 시작을 하게됩니다. 물론 우아하게 뮤지컬을 보러가는 경우도 있을수 있고, 아니면 와인을 마시러가는 경우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식에서 가장많이 선택하는 메뉴는 머니머니해도 삼겹살에 소주입니다. 그리고 저는 삼겹살에 소주한잔이 가장좋은 회식메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삼겹살을 굽는동안 동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수있는 기회를 제공하는것이 삼겹살에 소주 메뉴입니다.


회식은 서로간에 의사소통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것입니다. 특히나 회사대 개인의 의사소통의 기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하는것입니다. 그래야 회사에 구성원들의 생각을 회사경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할수 있는 기회로 만들수 있습니다. 회사는 회사의 구성원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조직이기 때문에 회사의 구성원들의 생각을 들을수있는 회식문화를 만들어서 회사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회식은 얼마나 자주하는것이 좋을까요? 이전직장에서는 한달에 한번정도 회식을 하였던것 같습니다. 뭐 그정도면 무난한것 같습니다. 그리고 회식을 한달에 한번, 혹은 두달에 한번으로 규정짓는것 보다는 어느 특별한 사안이 생겼을때 회식을 하는것도 괜찮은 방법인것 같습니다. 단, 회사의 구성원들의 생활에 방해되도록 회식시간을 잡으면 안된다는 전재하에 회식을 잡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회식을 하게되면 회사가 조금씩 달라진다는것을 보여주도록 회사도 노력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래야 그회사가 다니고싶은 회사가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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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세계일보

 

제가 하는일은 업체사람을 만나러 다니는일을 하고있습니다. 뭐 쉽게말하면 영업사원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업체사람들이 저에게 전화를 주어서 방문해달라고 요청하면 저같은 사람은 기분이 좋습니다. 분명 업체를 발굴하여 제가 전화를 하여서 업체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업체발굴과 담당자와 통화를 하여야하는 업무를 줄여주니 저에게는 기분좋은일입니다. 거기다가 시간을 내줘서 저를 만나주니 이것은 일석이조 입니다.


이렇게 업체를 발굴하여 회사에 담당자와 연락을 하여서 담당자를 만나는일을 하고있는 저같은 영업사원이 알고있으면 좋은 여러가지를 이야기 해보고져 합니다. 일단은 저같은 영업사원들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야기 하고싶은것은 저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깥으로 나돌아야하는 영업사원이 알고있으면 좋은것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져 합니다.


저처럼 하루종일 바깥을 돌아다니며 업체사람을 만나는일을 하고있는사람이 알고있으면 좋은것중 첫번째는 화장실입니다. 그것도 사람이 붐비지않는 곳으로 큰일과 작은일 모두가 편하게 해결할수있는 화장실을 많이 알고있으면 좋습니다. 특히나 저처럼 돌아다니는 직업은 가고자하는 목적지가 매일매일 바뀌므로 되도록이면 많은 화장실의 위치를 알아놓아야 합니다. 매일매일의 목적지에 맞는 화장실의 위치를 알아놓아서 당황스러운일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합니다. 만일에 목적지 근방에 화장실이 없다면 목적지와 가장가까운 화장실을 알아놓는것도 좋습니다. 특히 하루종일 차안에서 생활하는 영업사원은 울렁거리는 차안에 하루종일 있으면 장활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화장실의 위치를 알아놓는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알아두면 좋은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맛집입니다. 특히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영업사원은 맛있는 음식과 보양식을 잘챙겨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돌아다니면서 기력이 딸리는것을 방지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바뀌는 목적지와 최적의 장소에 맛집들을 많이 발굴해 놓아야 한여름에 기력딸림을 방지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글을 읽고계신 분들중에 자신의 친구가 영업사원이라면 맛집은 그친구에게 맡겨두면 맛집을 잘찾습니다. 영업사원이 하는일중에 맛집찾는 일은 정말로 잘합니다. 아마도 영업사원들은 그정도 촉은 가지고 있어야 영업사원이 되는것 입니다.


영업사원들은 원하지 않아도 가게되는것이 출장입니다. 그렇다면 출장을 가게되면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고속도로 휴게소에대한 정보들도 많이 알고있으면 좋습니다. 휴게소도 휴게소 나름에 경치와 음식들이 차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영업사원들은 어느정도 휴게소에대한 정보를 잘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출장의 경험으로 거의모든 휴게소들은 들려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속도로에서 영업사원이 들르자고 말하는 휴게소는 들르는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사먹는 간식은 가격대비 가장 효율적인 음식도 영업사원들을 잘알고 있습니다. 저요? 잘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감자가 가장 효율적인 간식거리 입니다.


영업사원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끼니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가격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것을 잘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배고프거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식당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고져했던 목적지에서 가까운 맛집을 이용합니다.


이렇게 저처럼 여러곳을 돌아다니고 회사바깥에서 하루를 보내는 영업사원이 알아두면 좋은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여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다니는 직업은 정말로 쉽지않은 직업입니다. 그래서 주위에 영업을 하시는분이 계시면 고생하신다고 한마디씩만 해주시면 그분들 힘내서 더욱더 열심히 일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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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인터넷검색

 

지금까지 저의글을 애독하셨던 분들이라면 제가 세상에서 가장흔한 한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것이 있다는것을 눈치채신분이 분명히 계실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세상에 가장흔한 주제는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랑에 대한글은 한번도 적어본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작성한글이 300개가 훌쩍 넘는데 그중에서 사랑에관한 주제로 이야기해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사랑을 안해봐서 사랑에대한 주제를 적어보지 않은것일까요? 그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도 젊은시절에 친구들사이에서 바람둥이로 소문이 났었던 경력도 있습니다. 뭐 다들 자신이 젊을때 한인기 했었다고들 말하는데 진짜인지 아닌지 믿을수가 없다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글올릴때 최대한 거짓말을 배제하고 글올리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글올리기전에 저의 생각에 오류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점검을하고 글올리기를 합니다. 그리고 젊을적에 한참 여성분들을 만나러 다닐때는 일주일에 한번씩 여성분들을 바꿔가며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저도 나름에 노력을 많이했습니다. 이성을 만나는것 절대로 쉬운일 아닙니다. 그래서 나름에 노력을 하였는데 나름에 노력을 하였던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야기 안합니다. 그래야 가만히 있어도 이성이 꼬인다는 느낌을 상대방이 받도록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성을 예전에 저처럼 일주일에 한명씩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것이 정확합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결혼하지못한 40대초반의 남성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무조건 결혼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있는 제가 사랑에 관련된 글한번 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유는 제가 결혼할뻔한 이성이 있었는데 그분과 너무나도 않좋은 기억을 가지고있어서 사랑에 대하여서 언급을 회피하였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않좋은 기억을 이번글로써 조금은 벗어날수 있을것이라 생각해서 이렇게 글한번 남겨봅니다. 결혼할뻔한 그분에대한 않좋은 기억이 헤어진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저의 머리속에 남아있는것을 보고있자니 당시에는 그에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랬는가 봅니다.


이제는 그러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날때가 된것 같아서 그분과의 않좋은 추억을 적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랑에 대해서도 좋은글감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적어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분과 헤어짐이 가까워오던시절 이분을 만나기위하여 여의도에 순복음교회에 찾아갔습니다. 이분은 일요일에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복음교회가 아주넓어서 이분과 마주치지 못하였습니다. 당시에 저도 나름에 이상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찾아간것 입니다. 그리고 이분에집에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그러자 이분 영등포역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분의 직장이 천안이라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오고 주중에는 천안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직장쪽에 내려가기 위하여 영등포역으로 간것입니다. 그리고 영등포역에서 이분을 잡았습니다. 물론 옆에 낮설은 남자와 다정히 제앞으로 오는것을 잡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나 버렸습니다. 뭐 이정도로 트라우마에 사로잡힌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고 저도 나름에 주변정리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회사 동료의 결혼식장에 가게됩니다. 결혼식은 양가의 많은하객들에 축하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끝이났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가족들과도 기념사진을 찍고, 친지들과도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회사동료와 친구들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신부의 부케를 받는자리에 저의 예전에 여자친구분이 떡하니 나타나서 부케를 받는것 입니다. 예전 여자친구가 부케를 받는모습을 보고있으니 정말로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있었고 앞으로는 그러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글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않좋은 기억을 너무나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봐야 저에게 좋을것이 없기때문에 이글을 끝으로 사랑에대한 트라우마 한가지는 극복한것이라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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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파이낸셜뉴스

 

이번글은 저의 창피하였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솔직히 창피한 이야기는 잘안하게 되지만 그런다고 벌어졌던일이 없어지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의 창피하였던 이야기로 다른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저는 기꺼이 저의 창피하였던 이야기를 숨김없이 할생각 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창피하였던 이야기를 자기자신이 한다는것은 정말로 큰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저의 창피하였던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30대 초반에 사업을 하다가 망한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먹고살기 위해서 취업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취업사이트에 들어가서 구인을 하는업체들에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계속해서 보냈습니다. 그렇게 수십통의 이력서를 보내고나서 면접을 오라는곳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기쁜마음으로 면접을 갔습니다. 그회사는 독일계 회사로 한글로 말하면 "금실"이라고 하고, 영어로 말하면 "골드와이어" 정도가 적당한 말입니다. 그냥 한글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그회사는 금실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진짜 금으로 실처럼 가늘게 만들어냅니다. 그 금실이 사용되는곳은 반도체 산업에 사용됩니다. 웨이퍼라는 회로가 그려진 실리콘과 작은 인쇄회로기판을 이어줘서 전기를 통하게 하는 목적으로 금실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그비싼 금을 사용해서 실을 만드는지 궁금하신 분이 계실것 같아서 잠시만 그에대하여 이야기 하고서 저의이야기를 이어갈까 합니다. 사실 구리를 사용해도 되기는 할것이지만 구리를 실처럼 가늘게 뽑아내는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순도가 아주높은 금은 연성이 좋아서 실의 두께를 얇게 뽑아낼수 있기 때문에 비싸도 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금이 전기전도성이 구리와 비교하여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반도체 크기를 자꾸만 줄이는 추세에 구리는 전혀 맞지않고 당연히 순도가 아주높은 금을 사용하는것이 적합합니다.


이쯤에서 다시금 본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그회사에 면접을 봅니다. 면접관으로 그회사의 사장님, 인사쪽사람, 제가 지원하였던 영업부 팀장이 면접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면접분위기도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나서 영어시험을 봅니다. 외국계 회사라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저는 영어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답안지를 엉망진창으로 하고서 그자리를 나왔습니다. 면접분위기로는 합격이고 영어답안지로는 불합격이 맞습니다. 그렇게 집에와서 전화를 기다립니다.


면접을 치른지 2 ~ 3일 정도가 흐른것 같습니다. 심심해서 저의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친구 면접을 보러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면접을 치루고나서 얼굴이나 보자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친구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더좋은 회사로 이직을 원하는 친구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친구이지만 저와 전공도 비슷해서 자주 전공에 관하여 이야기 하던 친구 이기도 합니다. 이친구 면접을 치루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정하고 그친구를 만났습니다.


저는 이친구에게 내가 얼마전에 면접을 치루고온 회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그친구가 자신이 오늘 면접을 보고온 회사와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이야기 하고, 회사명을 들어보니 제가 면접을 치루고온 그회사 입니다. 전공이 비슷하니 오라는 회사도 비슷한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흐르고 저에게는 전화가 안왔고 그친구에게는 전화가 와서 저는 그회사에 떨어지고, 그친구는 그회사에 붙어서 그친구는 이직에 성공하게 됩니다. 솔직히 당시에 저는 취업이 되어있지 않은상태라 꼭 붙었으면 좋았겠고, 그친구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떨어져도 아쉽지 않은상황인데 세상은 그렇게 공평하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거기다가 이친구와 제가 그회사 입사에 경쟁을 한것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친구 그회사 2달정도 다니다가 퇴사를 합니다. 저는 들어가고 싶어했던 회사인데 이친구는 아쉽지 않은상황에서 합격을 해놓으니 쉽게 그만둡니다.


어쨌든지 저와 친한친구와 같은회사에 지원했던적이 있어서 그기억을 한번 적어본 것입니다. 그회사에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회사 금실을 만드는 회사라고 서두에 소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회사 금실의 양을 조금씩 줄여서 납품하였던 경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납품하다가 납품을 받았던 회사의 직원이 할일도 없고 지루해서 납품받은 금실의양을 직접 재어보았다가 덜컥 걸려버린것 입니다. 금이 워낙에 비싸다보니 양을 조금만 덜납품 하여도 상당한 이득을 취할수 있는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납품양을 줄여팔다가 심심해하던 엔지니어에게 딱걸린 것이고, 그래서 신문에도 나왔던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오래전 일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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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아시아경제

 

지금부터 10년전에 경험하였던 것에대하여 기억을 더듬어 적어볼까 합니다. 아마도 기억을 더듬어서 작성된 내용이라 완전히 정확하다고는 볼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느정도는 맞기때문에 기록해놓을 값어치는 있습니다. 제가 사전에 이렇게 말해놓고 시작하는 이유는 저의글을 전부다 읽어보시면 이해가 되실것 입니다.


저의 기억으로 약 10년전의 일로써 당시의 상황을 100% 정확히 알고서 작성하기는 힘듭니다. 어쨌든 당시에 저는 외국계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끼게된것은 저자신이 탁월한 능력을 지니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고, 그렇게 탁월할 자신이 없으면 자신의 스펙이라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할때 였습니다. 당시에 현실에서도 직장생활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때로 기억이 됩니다. 그래서 저자신의 스펙을 높이기 위하여 이것저것 찾으며 직장생활을 하던때 입니다. 그러다가 카이스트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일반적으로 MBA과정이라고 합니다.)에대한 입학설명회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학설명회가 있는날 카이스트에 가게됩니다. 당시에 카이스트에 MBA과정이 처음생기는때 였습니다. 그래서 카이스트 에서도 아주 신경을 많이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입학설명회에 참석해보니 정말로 많은사람들이 와있었습니다.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설명회를 하는데 대강당에 빈자리가 없었고 계단에 앉아서 설명회를 듣는사람도 있었습니다. 카이스트쪽에서도 만족스러웠을 것입니다. 처음으로 MBA과정을 신설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입학설명회를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시험을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정수준의 점수이상의 토플점수를 가지고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토플점수가 아주높은수준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렇게 입학설명회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진행자가 외부초청강사 한분을 소개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존경받을만한 기업인은 없지만 그래도 이분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되어서 초청하였습니다."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나오신분이 SK그룹에 최태원 회장입니다. 그리고는 최회장이 최고경영자에대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서 들어갑니다. 그렇게 카이스트 입학설명회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카이스트 최고경영자과정 입학시험에 도전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뭐 결과는 좋지않게 나왔지만 나름에 동기부여로 열심히 공부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은 저의 이야기를 쓰기위해 이글을 남기는것이 아닙니다. 제가 갔었던 카이스트 입학설명회에 외부초청강사로 나왔던 최태원 회장에대한 이야기를 쓰고져 한것입니다. 일단 외부초청강사로 나왔던 최회장은 설명회 이후에 1달도 안되어서 탈세혐의로 감옥에 갔습니다. 아마도 카이스트쪽에서 정말로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자신있게 초청한 외부강사가 탈세혐의로 감옥에 갔으니 자신들은 완전히 똥물을 뒤집어쓴꼴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최회장은 어째서 탈세혐의로 감옥에 갔을까요? 여기서부터 저의 기억으로만 작성을 하는것 입니다. 10년전 기억이라 조금은 틀릴수 있다는것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SK의 주력생산품중에 한가지는 기름입니다. 그래서 원유를 사오면 정제공장에서 정제를 합니다. 다아시듯이 기름에는 각종세금이 엄청나게 붙습니다. 그렇다면 원유를 수입하여 정제하지 않고서 수입하는 바다위에서 정제한다면 어떡게 될까요? 세금이 붙지않습니다. 분명 우리땅에서 생산한것에 대하여 세금을 붙일수 있기때문입니다.


최회장이 탈세혐의로 잡혀간 이유는 위에서 설명드렸듯이 당시에 전세계에 몇대없는 바다위에서 원유를 정제할수있는 배를 구입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탈세로 잡혀간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 털면 먼지 무조건 나옵니다. 그래서 최회장을 털어서 잡아간것 입니다. 그리고 바다위에서 원유를 정제할수있는 배구입은 없었던것이 되버리고 최회장은 풀려나옵니다. 기름에서 나오는 세금이 엄청나기는 한가봅니다. 배한척 구매하려다가 대기업회장 감옥에 갔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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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파이넨셜뉴스

 

요즘에 큰이슈중에 한가지는 산업기술유출 입니다. 그렇다면 제가하는 일에는 이러한 기술유출 문제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제가하는일에도 기술유출 문제가 저의업종에 핫이슈 입니다. 일단 제가하는일은 산업용 접착제 유통을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이쪽분야도 나름에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래서 저희쪽에서 다른회사에 샘플을 진행할때도 회사이름과 담당자등에 대하여 기록하고 그러한 자료들을 제품제조업체에 넘겨줘야 샘플을 진행하여 줄수가 있는것 입니다. 그런데 업체분들은 저에게 샘플을 몇개만 달라고 하십니다. 그럴때 저는 정말로 난감합니다. 이쪽도 치열하고 기술유출 문제때문에 샘플주는것을 꺼리는 업체분위기 인데 말입니다.


얼마전에는 정말로 저희회사 제품이 경쟁업체로 넘어갈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에대하여 적어볼까 합니다. 그날은 사무실에서 밀린업무를 보고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회사이름을 알려줍니다. 회사이름을 알려준다고 제가 아는회사의 경우는 거의가 없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회사를 전부다 알수가 없기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러면서 자신의 회사는 장비를 만드는 회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대전화 관련하여 어느회사와 업무를 진행하는데 샘플을 줄수있는지 물어봅니다. 그런데 장비업체가 전화가 왔다는것은 휴대전화 관련하여 원자재는 전부다 선정이 된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저는 장비업체를 리뷰하는것이면 원자재가 전부다 선정된것 아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담당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당신들이 원자재 선택권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물론 장비업체는 원자재 선택권이 없습니다. 자신들도 휴대전화 관련업체에 장비를 만들어 납품하는 입장인데 원자재 선택권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거기다가 저의샘플을 넘기면 분명히 기존에 선택된 저의경쟁업체에 저희의 샘플중 일부가 넘어갈것이 우려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에대한것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장비업체 담당자는 아니라고 펄쩍뜁니다.


저는 이쯤에서 그사람과 이야기 하여보아야 우리샘플만 나가고 업무진행은 전혀 안될것임을 직감하고서 "당신들의 고객업체에 문의하여보고 선택된 원자재 바꿀용의가 있으면 그때되어서 다시한번 이야기 해보도록 합시다."라고 이야기 하고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회사 다시는 전화가 없습니다. 그회사의 담당자는 두가지중에 한가지 때문에 전화한것이 확실합니다. 한가지는 저의 경쟁업체의 부탁을 받고서 샘플을 얻으러 전화를 한것이거나, 아니면 다른한가지는 자신들의 장비를 걸어서 직접 도포를 해보기 위하여 샘플을 요청한것 입니다. 첫번째 경우는 가장우려스러운 경우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경우도 얄미운 행동이 맞습니다. 이유는 시중에 마트등에 가게되면 저렴한 제품들 많습니다. 그중에 아무거나 사가지고 장비에 걸어보면 끝나는 일입니다. 그러면 도포가 잘되는지 확인을 할수가 있습니다. 그정도 금액은 만원도 안하는 금액인데 그것도 아까워서 저희에게 샘플을 달라고 한것은 얄미운행동이 맞습니다.


위의예에서 담당자가 첫번째 생각으로 저에게 전화를 걸었을지 아니면 두번째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을지 정확히는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두가지 모두다 좋은방법은 아닙니다. 그것은 저를 이용해 먹기위한 방법일 뿐입니다.


어쨌든, 제가 우리나라에 유통하는 제품은 정말로 좋은원자재로 만든제품입니다. 아마도 세계 1등 회사의 제품보다 좋은제품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제가 세계 1등이며 국내 1등인 회사의 대리점을 해봐서 그회사의 제품수준이 어느정도인지 잘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유통하는 제품이 경쟁업체로 넘어가는것은 지극히 싫습니다. 그리고 제가유통하는 제품에대한 품질을 확신하기 때문에 저는 오늘도 저의제품을 열심히 판매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이좋은제품을 이용하여 더좋은 제품을 만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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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인터넷검색

 

오늘은 불현듯 저의 가장젊고 꽃다운 나이였던 20대 초중반의 기억에 대하여 적어볼까 합니다. 저의 인생에 가장 꽃같았던 20대 초중반에 기억은 군대기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남들보다 공부를 잘못해서 대학을 2년늦게 입학합니다. 그리고 대학을 한학기 다니고나서 바로 군대영장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무더운 1993년 7월 19일에 군대에 입대를 하였습니다.


군대에 입대를 하기전날 정말로 잠한숨 안왔습니다. 어차피 가야하는 군대이긴 하지만 군대라는 낮설은 장소에 가야한다는 부담감에 잠만 안오는것이 아니라 군대에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어찌나 빨리가는지 어느새 아침이 밝습니다. 저는 군대에 부모님과 가는것이 좋은방법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 친구들에게 배웅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여놓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부모님께 큰절을 드리고 "잘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만나서 논산행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신병훈련을 논산에서 받게된것 입니다.


일단은 부모님과 함께가는것 보다는 부담이 덜하기는 하였습니다. 이유는 친구들은 제가 우울해 할까봐 열심히 장난도 쳐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되어서 훈련소에 입소합니다. 입소하는데 부모님이나 일가친척, 친구들이 보이는 곳에서는 걸어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일가친척, 친구들의 시야가 사라진곳으로 가고나서는 조교들의 태도가 돌변하고 바로 오리걸음으로 걸어갑니다.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던것은 논산훈련소는 전반기 군사훈련을 마치고 후반기 교육을 받을사람들이 가는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사람들 보다는 편하게 군생활을 할수있는곳으로 훈련을 받으러 갔기때문입니다.


군대에 입대하고 훈련소에서 정말로 화장실을 1주일이상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이유는 사회에서 먹었던 음식과 다르게 군대에서 먹는음식의 질자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군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제가 몸담았던 군대는 그러하였습니다.


전반기 4주간의 군사훈련은 견딜만 하였습니다. 어차피 몸이 힘들각오를 하고서 입대를 한것이라 나름대로 버틸만하였던것입니다. 그리고 전반기 교육을 모두가 마치고 저는 주특기가 화학병과를 받아서 전라도 광주에 상무대로 가게됩니다. 그곳에서 교육기간은 8주가 됩니다. 저의 병과인 화학도 몇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전부다 기억은 나지가 않아서 생각나는것만 적어보겠습니다. 화학병, 제독병, 작통병 더있는데 기억이 안납니다. 그중에 가장흔한병과가 화학병으로 후반기 교육을 받는 화학병과중에 가장고생하는 병과입니다. 그리고 제가받은 작통병은 작전통제병의 줄임말로 소위말하는 땡보직입니다. 작통병 병과는 1년에 2기수정도밖에 없는데 운좋게 저는 그보직을 받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작통병은 3보이상 승차라는 말이나오는 정말로 땡보직입니다. 그리고 교육도 몸으로 뛰는것은 거의하지 않았고 책상에 앉아서 책만보는 보직입니다.


그렇게 후반기교육을 받고서 자대배치를 받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저와같이 교육을 받았던 친구들은 전부가 군용짚차로 데리고 가는데 저는 일반열차로 이동을 합니다. 그리고 강원도에 102보충대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금 자대로 보내졌습니다. 분명 저는 땡보직의 교육을 받고왔는데 강원도 철원에 일반 보병부대로 보내집니다. 믿고싶지않은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이제갖 이등병 계급장을단 제가 이상하다고 물어볼수도 없는노릇 입니다.


결국 저의 군생활은 강원도 철원에서 일반 보병으로 군생활을 마쳤습니다. 그것도 남들이 경험하기 쉽지않다는 철책근무도 서보고 말입니다. 자대에 처음갔을때는 8주동안의 후반기교육이 저의 군생활에 도움이 하나도 안되고 오히려 고참들의 괘롭힘에 빌미가 됩니다. 이유는 8주간 잘놀다가 이제야 자대에 왔다는 이유입니다. 저는 저나름에 억울한데 말입니다. 분명히 3보이상 승차를하는 보직에 교육을 받았는데 보병이라니요. 정말로 억울했지만 억울함을 호소할곳도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의군생활 26개월을 꽉꽉채우고 1995년 9월 21일에 제대를 하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26개월 하고도 2일더 군생활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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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토마토뉴스

 

제가 직장을 다녔을때의 기억을 되살려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당시의 나이가 29살로 한참 혈기가 왕성할때 였습니다. 회사는 외국계 회사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회사는 직원들에게 법인카드를 지급하여 줬습니다. 법인카드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카드(이하 아멕스카드)를 회사법인카드로 사용하고 있었고 저도 회사법인카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카드를 잘사용하지 않아서 그카드가 무슨카드인지 잘몰랐습니다. 지금부터 10년이상 전이야기 입니다. 당시는 신용카드가 현재처럼 많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한두개 정도씩은 카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많은종류의 카드가 존재하지 않던시절 입니다. 특히 카드의 등급자체가 크게 존재하지 않던시절 입니다.


당시에 저는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여자친구가 존재하던 시절은 그리많지않은 시간이었지만 특별하게 당시는 저에게 여자친구가 존재하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주말에 데이트를 합니다. 보통 연인들과 비슷하게 만나면 영화보고 밥먹고 등등을 즐겼지만 그날은 특별하게 남대문시장에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뭐 당시 여자친구가 필요한것이 있어서 저를 같이 데리고 간것입니다. 잘들 아시듯이 남자들은 쇼핑을 오래하는것 별로 안좋아 하지만 저는 당시 여자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에 아무소리없이 남대문 시장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여자친구는 자신이 필요한것을 사기위해 남대문 시장을 이잡듯이 돌아다닙니다. 저는 힘들어 죽겠지만 아무소리 않하고 따라다닙니다. 그렇게 필요한것을 전부다 샀습니다.


저는 집으로 가자고 이야기 하였고 당시의 여자친구는 시계방에 시계들이 너무 이쁘다고 구경만하고 가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군소리없이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지금까지 참았고 마지막 한번만 참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시계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당시 여자친구는 이것저것 시계를 보더니 한가지 시계에서 시선이 고정됩니다. 분명히 그시계를 살것같았습니다.


사실 저는 여자친구가 생겨도 물건을 잘사주지 않습니다. 당시에 여자친구도 그러한 사실을 잘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자꾸만 그시계를 보면서 이쁘지 않냐고 저에게 물어봅니다. 저는 건성으로 이쁘다고 이야기 해줍니다. 그시계의 가격이 6~7만원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는 다른시계도 돌아봅니다. 그러나 당시의 여자친구에 눈에는 벌써 마음에 뒀었던 시계밖에 안보이는것 같았습니다. 다른시계들은 건성으로 보고 자꾸만 그시계 있는곳으로 갑니다.


매장주인은 마음에 들면은 남자친구에게 사달라고 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매장주인은 저의눈치를 봅니다. 그리고 당시의 여자친구는 저에게 큰마음을 먹고서 이야기 합니다. "이시계 사주면 안돼?"라면서 말입니다. 거기다가 "이시계 너무비싸지? 그냥 다른시계살까?"라는것입니다. 어느순간 제가 시계를 사줘야하는 순간이 온것입니다. 그시계 안사주면 오랬동안 이야기 나올상황 입니다. 어쩔수없이 저는 "마음에들면 사, 내가사줄께"라고 말합니다.

 

결국 생각지도 못하게 시계를 선물하게 됩니다. 주인은 저를보면서 여자친구한테 그정도도 못해주는 찌질이로 보는것 같았습니다. 즉 없어보이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저는 그시계를 계산할때 당시에 현금이 부족하여 어쩔수없이 회사법인카드로 계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법인카드를 내놓자 매장주인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당시의 아멕스카드는 일반인들이 발급받을수 없었던 카드였던것입니다. 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시계를 계산하고 나오는데 새파란 젊은 저에게 매장주인은 90도로 인사를 합니다. 카드하나 보여줬는데 대우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렇게 카드하나가 사람을 달라지게 하는구나 라는것을 알고나서는 저는 회사법인카드를 소위말하면 긁고다녔습니다. 정말로 카드쓰는 재미에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월급은 카드사용에 전부다 사용하였다고 볼수가 있습니다. 정말로 회사법인카드를 내밀면 거의 전부가 90도로 인사를 해줍니다. 정말로 신기했습니다. 그런재미를 아직도 잊을수가 없는것을 보니 저도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남들에게 대접받는것은 절대로 기분나쁜일은 아닌것 같습니다. 어쨌든지 저는 아멕스카드에대한 기억은 좋은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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