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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한국경제

 

우리가 사회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생각보다 똑똑한 사람을 만날수가 있고, 아니면 생각만큼 똑똑하지 못한 사람을 만날수도 있습니다. 저도 저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생각보다 똑똑하고 저의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을 만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정말로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저의 전공이 화학공학 이었는데 화공과를 나왔다고 화학에 대하여 많은것을 아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분을 통하여 알게 되었고, 이쪽 분야도 너무나도 다양하여 평생을 공부해도 전부다 알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인생의 진정한 스승이 바로 그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저만 알고 있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저도 나이라는것을 먹고 그로인하여 사회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가장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것이 반도체용 접착제를 생산하는 업체에 입사를 한것 입니다. 이곳에 입사하고 나서는 처음 하는것이 접착제에 대한 교육을 시켜줍니다. 그회사에서 나름 똑똑하고 학벌이 먹어준다는 박사님이 반도체용 접착제에 대하여 교육을 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정말로 눈에 불을켜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분 말씀을 하시는것이 대부분이 영어이고 그뜻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용어들을 열심히 설명해 주십니다. 그러한 교육은 정말로 지루한 교육이 맞습니다. 저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 지는것 같았습니다.

 

반도체용 접착제에는 은가루가 들어갑니다. 그것도 아주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비싼 은가루를 넣는 이유를 저를 교육해 주시는 박사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저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보다는 교육하는 자료에있는 내용을 열심히 읽어 주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저는 반도체용 접착제라는 분야가 처음이어서 모르는것이 많이있고, 몰라서 물어보는데, 원하는 답변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한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교육을 마치게 됩니다. 정말로 무미건조한 교육시간 이었고, 정말로 지겹고 힘든 교육시간 이었습니다.

 

이렇게 교육이 끝나고 저의 상사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할만하냐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시간에 의문이 생겼던 은가루가 들어가는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상사도 갑자기 교육용 화일에 나와있는 내용만 열심히 떠듭니다. 물론 거기에 나와있는 알기힘든 용어들을 열심히 나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의 교육을 담당하신 박사님과 짠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만큼 똑같습니다. 그리고는 교육을 받았던 내용을 저의 상사는 다시한번 이야기 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힘든 교육을 마치고 홀가분한 상태였다가 저의 상사가 교육을 시작하니 다시 힘든시간을 견뎌내야하는 시련을 겪게됩니다. 교육이 끝나고 달아났던 피곤함과 졸림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교육기간이 끝나고 나서 모르던 분야에 도전하게 되어서 정말로 시간이 날때마다 이분야에 대하여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전부다 제가 교육을 받았던 한가지 화일에 있는 내용의 용어들만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이회사에서 먹어준다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도 그화일 한군데에서 나오는 용어 이외에는 다른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교육을 받았던 화일에있는 내용을 조금 외워보기로 하였습니다. 화일의 양이 50페이지가 넘어서 전부다 외우는것은 버거웠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외우는데는 금방 이었습니다.

 

이렇게 외운결과 놀라운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회사내에서 몇년씩 근무한 사람들과 대화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저도 어떠한 회의가 있으면 자꾸만 회의 참석을 독려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가 회사내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화일에 내용을 조금 외운것 뿐인데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웃기는 상황입니다. 결국 그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지식은 전부다 한개의 화일안에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몇년간 회사를 다녔던 사람들은 그화일에 들어있는 용어들을 하도많이 들어서 자연히 외워진 것이고, 저는 의도적으로 외워서 몇년의 갭을 매웠던 것입니다.

 

현재의 저는 그렇게 어려운 용어들을 잘사용 안합니다. 물론 어려운 용어들을 알고는 있지만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여 저를 대단한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알기쉬운 용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에게 들으면 바로 알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의문을 가졌던 한가지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면, 그회사에 입사하고 한참뒤에 알게된 사실중 반도체용 접착제에 비싼 은가루가 들어가는 이유는 다른것이 아니라 반도체가 전기가 통하고, 안통하고를 반복하면 열이 많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열을 빼주기 위하여 은가루를 사용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저를 교육해줬던 박사님도, 저의 상사도, 그회사에서 대단하다고 소문난 사람도 몰랐고, 저는 공부해서 그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금가루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격대비 효율성을 따지면 은가루가 맞다는 사실도 말씀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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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농민신문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생활이 정말로 평범하게 생활하기에도 쉽지않은 세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땅위에 평범하게 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 저는 솔직하게 말하면 존경을 표합니다. 그만큼 요즘의 세상에 평범하게 살아가기 힘든세상인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평범하게 생활하기 힘든지 하나씩 조목조목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저는 이세상을 살아가는 40대 초반에 미혼의 노총각의 시각으로 보고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제가 남자인 관계로 남자의 관점에서 보고서 이야기 할것입니다.


이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합니다. 여기서부터 첫번째 시련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수학능력시험의 시기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경쟁사회의 시작을 맛보게 됩니다.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묶어서 이야기한 이유는 대부분이 초등학교 이전부터일 확률이 높지만 본격적인 경쟁의 시작점을 중학교 부터로 보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여서 누군가는 대학에 진학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절망을 맛보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우리나라의 대학은 평준화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혹독하게 경쟁을 치루게 되어있습니다.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진학을 하여도 누군가는 유명한 대학에 진학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게되면 그에대한 절망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의 생각은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평준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진학하여 각학과별로 배우는 과목들과 수준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대학이 평준화 되어서 대학생들끼리의 쓸데없는 경쟁보다는 대학에 진학하고나서의 실력을 키우는 경쟁을 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뭐 이것은 저의 생각이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을 나오건 나오지 않았건간에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경제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남성들은 문제가 없으면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합니다. 뭐 군대를 갔다왔다고 어떠한 혜택이 있는것도 아니어서 군대를 가기가 싫지만 어쨌든지 나라에서 가라고 하니까 가야합니다. 그렇게 군대도 다녀오고 취업에 성공하였다고 자신의 인생이 좋아지는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결혼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려면 이성을 만나야 합니다. 어찌어찌 하여서 이성을 만나면 이성은 그남자의 경제력을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제경험을 말씀을 드리면 정말로 별볼일없는 여성분을 친구가 소개해준적이 있는데 이여성분이 저에게 물어보는것이 "오빠차는 뭐예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사실 어처구니가 없었고, 답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답변하여주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어렵사리 이성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되어도 다음은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키우면서 자신도 나이를 먹게됩니다. 그리고 요즘의 사회구조가 40대정도가 되기시작하면 회사의 정리해고의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물론 하는 업종에 따라서 늦고 빠르고의 차이는 있을것입니다. 이말은 정년이 되기전에 일자리를 잃게되는 경우가 더많아진 사회구조로 일을 더할수 있는데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할수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경제력을 잃은 남자는 더이상 남자로써의 가치를 상실하는것이 요즘의 사회구조 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평범하게 살고계신 분들을 보고있자니 대단하시고, 존경스럽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지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말씀을 드리며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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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서울경제

 

지금으로부터 20년정도 전에일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18년 정도가 된것같습니다. 당시에 군대를 제대하고 바로 복학을 하여서 복학생의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어서 그런지 친구들과 술자리를 자주 갖게됩니다.


당시에 저는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들어가야할지 아니면 없는돈을 모아서 어떡게든 사업을 시작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상황에서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저의 그러한 고민들을 이야기할 출구였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고민해서 생각해낸것에 대하여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한참동안 고민하여 생각해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식혜와 수정과가 되겠습니다. 당시에 식혜와 수정과가 지금처럼 제품화 되어서 나오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식혜나 수정과를 먹고싶으면 집에서 담가서 먹어야 하였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식혜나 수정과를 제품화 시키면 어떨까?"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물론 술자리에서 말입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그것은 말도안된다고 이야기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상품성이 있으면 벌써 제품화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생각해낸것이 있는데 그것은 캔커피였습니다. 캔커피도 당시에는 시중에 없는물품입니다. 커피도 집에서 타먹던 시절이라 캔커피는 시중에 아예 없었습니다. 집에서 커피를 타먹을때 얼음을 넣어서 냉커피를 만들어 먹기는 하였지만 시중에서 쉽게 커피를 사먹을수는 없었던 시절입니다. 물론 저는 시원하게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내먹는 방법이 좋을것 같다는 생각정도는 하였습니다.


위제품중에 가장먼저 출시된것이 캔커피 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서 몇달도 되지않아서 캔커피가 출시되었습니다. 지금에서야 흔한 제품이었지만 당시는 획기적인 상품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서 일년정도 있다가 출시된것이 식혜와 수정과입니다. 그리고 식혜는 출시되고 일년도 되지않아서 히트상품이 됩니다. 저는 당시에 그러한 제품들을 만들능력이 안되어서 포기하였던 것인데 제품화되어서 히트상품까지 되니 속이 조금 쓰렸습니다.


사실 캔커피는 곁다리 제품이었고 진짜로 해보고 싶었던것이 식혜와 수정과 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제품을 생산해줄 대기업을 찾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저의나이가 너무나도 어려서 상대방이 상대를 안해주거나 아니면 저를 이용해먹기만 할까봐 시도도 못해보았습니다.


당시에 식혜와 수정과를 대기업 사람과 만나서 사업화준비를 하였다면 어떡게 되었을까요? 어떡게 되었을지는 잘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거의가 제가 털리고 끝이났을 확률이 높습니다. 제가 어리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사회생활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저에게 불리한 계약을 할때에 어떡게 대처하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위에서 이야기 하였던 식혜나 수정과 같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어떨까요? 지금은 확실하게 성공할수있고 대기업과의 계약에서도 절대로 불합리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도 때가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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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본인검색

 

저는 사업을 하고있습니다. 제가하는 사업은 산업용 접착제를 유통하는일을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제가하는일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제가하는일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하는일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하고나니 일하는것이 힘들지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일을 한다는것이 이렇게 좋은것인지 저의일을 사랑하고나서 깨달았습니다.


저는 언제부터 산업용 접착제일을 시작했을까요? 저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년도 되지않아서 산업용 접착제쪽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생소한 분야여서 의아해한적이 있지만 지금은 저의옷에 꼭맞는 옷을입고있는 기분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일이 저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동안에 외도를 한적이 있지만 역시나 사람은 하던일을 해야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시동안의 외도는 큰문제가 되지않고 자연스럽게 제가 사랑하는 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저의일을 사랑하는 이유는 제조업에서 산업용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경우는 거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접착제는 제조업의 바로미터로 보시면 정확합니다. 그런데 제가하는 접착제 분야를 잘아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그리고 접착제 분야에 일하다가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며 다른분야로 뛰쳐나갔던 사람들 백이면백 전부다 다시금 산업용 접착제 시장으로 돌아옵니다. 그만큼 매력있는 일입니다.


이쪽시장은 암묵적으로 지켜주는 룰이 한가지 있습니다. 이것은 이시장의 선두업체가 닦아놓은 아주좋은 암묵적인 룰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접착제를 일반시장에 뿌리지 않는다는 룰입니다. 다시말해서 자신들의 회사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속칭 삐끼상품 몇가지는 시장에 뿌리지만 대부분의 제품군들은 절대로 시장에 뿌리지않고 자신들의 영업사원을 통해서만 제품을 구매할수 있도록 조치해 놓은것 입니다. 그러한 매력때문에 이쪽시장을 떠났던 사람도 다시금 이쪽시장으로 돌아오는 이유가 됩니다.


또하나의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그것은 말씀을 드릴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글을 작성하면서 어떠한 중요한 암묵적인룰을 말해버리면 그시장이 교란될것이기 때문에 그에대해서는 절대로 말할수가 없습니다. 이점은 양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글을 작성하면서 인터넷으로 UV 접착제를 쳐보았더니 위의 사진처럼 몇가지 회사의 몇가지 제품이 검색되어 나옵니다. 이러한 경우가 삐끼상품이 되는것 입니다. 위사진중에 제가 취급하는 회사의 제품도 눈에 보입니다. 물론 그제품도 삐끼상품이 맞습니다. 그렇게 그회사의 이름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이상의 제품은 시장에 절대로 나오지가 않습니다. 이유는 우리시장의 암묵적인 룰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UV 접착제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판매하기 시작한 회사는 미국의 쓰리본드라는 회사가 처음으로 올려놓고 판매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UV 접착제 자체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판매하는것도 사실은 어느정도 암묵적인 룰을 깨버린 경우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회사에서도 한가지 제품만을 시장에 뿌린것 입니다. 나머지 제품은 그회사 관련된 영업사원에게서만 구매할수 있고, 만일에 뿌려놓은 삐끼상품이 적합하면 그제품을 사용하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이글을 작성하는 목적은 그시장의 암묵적이지만 어떠한 룰을 깨버리면 그시장의 교란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그시장이 매력적인 시장에서 별로 매력없는 시장으로 바뀌면서 그시장이 혼돈이 찾아온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간의 시장교란을 목적으로 행동을 할때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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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인터넷검색

 

요즘에 스마트폰 수리업체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유는 스마트폰의 보급이 늘어나서 스마트폰 관리를 잘못하여 액정이 깨지는경우 액정자체만을 수리하면 다시 새것처럼 사용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시듯이 액정이 깨진것을 수리하여 새것처럼 사용하는 경우의 한예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액정과 강화유리를 붙일수있는 제품소개를 요청하는 업체들이 늘어납니다. 앞에서도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듯이 저는 산업용 접착제를 유통하는일을 합니다. 그래서 적합한 제품을 소개하여 드립니다.


오늘은 제가 취급하는 제품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유는 저에게 제품에 대하여 문의주시는 분들에게 제품소개 자료를 드려도 전혀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제품소개자료에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해보려고 합니다. 제품을 소개하는 소개자료를 영어로는 TDS(Technical Data Sheet)라고 부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기술자료 정도로 번역하면 될듯 싶습니다. 그러면 제가 업체분들에게 드리는 자료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출처 : 본인

 

위의 사진이 본인이 취급하는 제품에대한 기술자료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품에 대하여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절대로 어렵지 않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출처 : 본인

 

제품소개자료의 서두입니다. 가장왼쪽의 보라색 상자를 보시면 PRELIMINARY DATA SHEET 라고 적혀있습니다. 이것은 이제품이 개발단계의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SECURE CP-7518 이라고 적혀있는데 이것은 제품이름 입니다. 위에서 말하였듯이 스마트폰 액정을 붙이는데는 CP-7518이라는 제품이면 문제없습니다. 어떡게 아냐구요? 그것은 경험입니다. 제품이름 아래에 acrylic based 어쩌구 적혀있는데 이것은 아크릴이라는 원자재가 기본으로 되어있는 제품이라는 뜻이고 그밑에는 튼튼하게 잘붙는다는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fotopolymer라고 적혀있는것은 이제품을 만든 제조사의 회사로고 입니다. 다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출처 : 본인

 

다음항목은 제품에대한 조금더 구체적인 설명입니다. single component는 1액형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flexibility는 유연성이 있는제품 이라는 말입니다. various는 다양한곳에 잘붙는다는 이야기 입니다. polycarbonate, polyamide, PET, ABS, acrylic 등은 이러한 재질에는 잘붙는다는 이야기 입니다. 특히나 여기서 중요한것은 아크릴에 잘붙는 접착제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품은 특별하게 아크릴에 잘붙습니다. 다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출처 : 본인

 

위의 사진을 보시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으실것 같은데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지만 쉽게 생각하면 한없이 쉽습니다. 일단 보라색쪽을 보시면 UNCURED MATERIAL 이라고 적혀있는데 접착제는 액상으로 되어있다가 특별한 조건이 주어지면 고체로 변합니다. 그런데 UNCURED는 경화전이라는 이야기로 액상의 상태를 이야기 해주는 것입니다. 액상상태의 이것저것 테스트 결과를 수치로 나타낸것 뿐입니다. 다음은 무엇이 나와야 될까요? 맞습니다. 경화조건이 나오면 됩니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출처 : 본인

 

위의 사진에 보라색의 글자를 보시면 CURING PERFORMANCE라고 적혀있습니다. 이것은 접착제를 굳히는 경화조건 입니다. 위제품은 자외선을 쪼여서 10 ~ 30초면 완전히 굳는제품 이라는 이야기를 열심히 떠들고 있는것 입니다. 경화에너지는 2,500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무엇이 나와야 할까요? 맞습니다. 경화후 물성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순서가 딱맞는것 입니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출처 : 본인

 

위의 사진에 보라색 라인을 보시면 CURED MATERIAL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경화가 일어난후 제품의 물성에 대하여 이것저것 설명하여 놓은것 입니다. 이렇게 간단한것을 가지고 저에게 모른다고 자꾸만 전화를 주십니다. 마지막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은 여기까지만 보아도 문제없지만 마무리는 깔끔하게 하는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출처 : 본인

 

위의사진이 기술자료의 마지막 입니다. MATERIAL HANDLING은 제품을 어떡게 사용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다들 잘알고 계셔서 내용은 눈으로 보시면 됩니다. 다음은 STORAGE는 보관방법 입니다. 8℃ ~ 28℃ 정도만 눈여겨 보시면 문제없습니다. 다음은 CAUTION은 주의사항 정도입니다. 잘아시듯이 아이들이야기도 나옵니다. 화학제품이니 아이들손에 닿지않도록 보관하는것은 당연한것 입니다.


제가 유통하는 제품에 대한 기술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순서를 다시금 되집어보면 제품의소개 -> 제품의 구체적인설명 -> 경화전물성 -> 경화조건 -> 경화후물성 -> 사용방법 및 보관조건 으로 정리하면 맞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간단한것을 가지고 저에게 자꾸만 물어보셔서 머리아파 죽겠습니다.


특히나 스마트폰 수리업체는 일반적으로 영세해서 그런지 위의 기술자료를 넘겨줘도 이해를 못하시기에 제가 유통하는 제품에대한 설명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특히나 위에서 소개한 CP-7518이라는 제품은 스마트폰 수리에는 딱인 제품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참 위의 CP-7518은 저의 홈페이지에 나오지 않는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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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전북일보

 

사람들은 전부다 다른생각을 하면서 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이유는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똑같은것을 보게되더라도 그에대한 생각이 다른것 입니다. 이유는 자신의 이해관계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보는습관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것 입니다.


예를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전에 뉴스에서 나왔던 최저임금에 대해서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의 입장과 그기업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사람과의 시각차이는 명백히 갈라져 있습니다. 고용자는 최대한 적은돈을 주고서 최대한 많은 노동력을 얻어내려 노력할 것이고, 고용된 사람은 최대한 적은노동력을 제공하고 최대한 많은 월급을 받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것을 법으로 적정선을 정하는것이 국회에서 해야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어떨까요? 민주주의는 위의예에서 보는것의 입장차의 기본을 보장하여 주어야 합니다. 다시 다른말로 한다면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의예에서 고용주와 노동자간의 시각차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러한 시각차이를 인정하고 그에대하여 적정한 수준을 만들어 가는것이 민주주의에 기본입니다. 즉 고용인의 입장도 인정하고 노동자의 입장도 인정하여 그들을 조율하여 서로간에 상생할수 있도록 모색하는것이 민주주의라 할수가 있는것 입니다.


그러면 전정권인 이명박정부는 어떠하였을까요? 정치이야기 안하려고 노력해도 어쩔수 없습니다. 이명박정부때 쌍용자동차 노조에게 하였던 행동을 보게되면 당시에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였는지 의심이 됩니다. 사람들의 다양성을 철저히 외면하고 고용주 위주에 정책을 펼쳐서 힘없는 국민들이 죽어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행동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즉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러한 다양성을 조율하는 행동을 하는것이 국가가 해야하는 일인데 당시는 힘없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갔기 때문입니다.


이명박정부의 앞정권인 참여정부때는 어떠하였을까요? 기억나는것은 식당주인들의 솥단지를 던지며 시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에 국가에서는 어떠한 노력을 하였을까요? 일단 시위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였고, 경찰들이 일정지역 이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조치만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시위도 민주주의에 표현의 자유이므로 시위를 한사람을 연행해 가지않았습니다. 그러한것이 민주주의가 맞습니다.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시위라도 하여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는것도 민주주의입니다.


이렇게 글을쓰고보니 참으로 씁쓸합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채택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제대로된 민주주의적 행동에 제약을 받고있다고 생각하니 이글을 쓰면서도 조금은 화가나는것이 사실입니다. 저의친구중 한명도 길에서 시위를 하는사람을 보면서 혀를차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친구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피로써 세워진 민주주의 입니다. 이유는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돌아보고 당시에 집권하였던 대통령들의 면면을 보고있으면 자연히 알게됩니다. 그러나 그러한것에 눈감는 사람들이 많은것도 사실입니다. 이유는 권력이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지나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민주주의는 피를먹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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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한겨레21

 

제가 자취생활을 하였던 기간은 약 15년정도 되는것 같습니다. 자취생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것 같은데 정말로 시간이 빨리흘러 가는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자취생활을 시작하게된 이유부터 시작하는것이 올바를것 같습니다. 제가 자취생활을 시작한 이유는 젊은시절 저희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저희집이 지방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때의 저의나이는 26살로 군대를 갔다오고 대학교 2학년때 입니다. 그해 12월에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저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상황이라 그때부터 저의자취생활의 시작이 됩니다.


자취방은 성남에있는 방한칸짜리 옥탑방에서 시작을 합니다. 그곳은 제가다니는 학교에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는 학교와는 아주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옥탑방에 살아보신분은 아시겠지만 옥탑방은 여름에는 엄청덥고, 겨울에는 엄청춥습니다. 그렇게 저의자취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취생활의 시작은 제나이 27세때 부터입니다. 사실 저의 속마음은 좋기는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간섭을 받는것이 최소화 되고 제가하고싶은것 마음데로 할수가 있어서 였습니다. 지금은요? 자취생활 안좋습니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제가 자취생활을 하면서 정했던 철칙중에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희과 친구들을 저희집에 데려오지 않는다는 철칙입니다. 특히나 술마셔서 집에못가는 친구들은 절대로 저희집에 발도못붙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날때마다 친구들에게 저의철칙을 이야기 하여주었고, 친구들도 저의 생각을 어느정도 이해하였는지 그철칙을 잘지켜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의자취생활이 저의몸에 베어버립니다. 그리고 당시에 저의형이 성남에있는 공군비행장에서 근무를 하여서 가끔씩 저희집에 놀러와서 술한잔씩 마시기도 하고 저의 자취방에서 잠을자고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그당시의 저의형이 좋았습니다. 당시의 저의형은 저의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해서 그부분은 아쉽습니다.


제가 자취생활을 할때에 가장힘든때는 당시에 저의 학년이 대학교 3학년입니다. 3학년은 그과에 주옥과같은 과목들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공대에 대학3학년은 정말로 생각하기 싫을정도의 시간입니다. 주옥과같은 과목들에 시험은 기본적으로 학기당 3~4번씩 보는데 저는 주옥같은 과목을 7과목을 듣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3번만 본다고 하여도 한학기에 21번의 시험을 치릅니다. 한학기가 16주정도 되니까 매주시험을 치룬다고 보시면 맞습니다. 시험시간도 짦은것은 2시간, 길게시험보는 과목은 4~8시간동안 시험을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치도록 시험을 보는날은 시험이 끝나면 거의가 술자리가 있습니다. 공부한다고 지친몸을 건사하는데 술만큼 좋은것이 없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날도 6시간정도 시험을 치루고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오늘시험에 대하여 품평회가 열립니다. 시험을 망친친구는 술을 거퍼마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술자리가 끝나면 지친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합니다. 이유는 대부분 전날에 밤샘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밤샘을 하고서 술자리에서 술한잔 마시고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걸어서 10분정도의 거리가 어찌나 멀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겹게 집근방에 다다르고 있는데 멀리서보니 공사를 하는지 땅을파놓은곳이 있는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그곳을 조심하여서 가야한다고 생각을 하고서 조심조심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술을마시고 전날에 밤샘을 하여서 그런지 제몸이 자꾸만 구덩이 쪽으로 가는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분명히 맨정신 이었으면 크게다쳤을 것입니다.


구덩이의 높이는 저의키보다 조금높은듯 보였습니다. 한 2m정도의 높이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작은사다리가 있었습니다. 분명 이곳에서 공사하신분이 들어갔다가 나오기 위하여 넣어놓은 사다리 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사다리를 이용하여 빠져나오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날에 밤샘을 하였고 술도거하게 마신상태라 빠져나오지 못하였습니다. 결국은 너무나 피곤하여 구덩이속에서 밤을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어느정도 술이깨고서야 구덩이를 빠져나올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집에가서 부족한잠을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나보니 몸이 너무나 아픈것 입니다. 구덩이에서 잠을잔것이 잘못된것 입니다. 결국 몸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고있는데 저를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실감하며 자취생이 아프면 서럽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어서 기운을 차려야 하는데 밥먹을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힘든몸을 이끌고 냉장고문을열어보니 냉장고에 오렌지한개가 덩그러니 있는것 이었습니다. 그것을 칼로잘라 빨아먹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말입니다.


전국에계신 자취생여러분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프면 서럽습니다. 아픈데 도와줄 사람이 없기때문입니다. 저도 그이후부터는 아프지 않을려고 무지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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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인터넷검색

 

이번글은 제가 광주에 위치한 한업체를 영업하였던 경험을 공유해 드리고져 하여서 작성하는 글입니다. 그회사는 위의 사진에 회사로써 터치패널을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떠들썩 하게만든 회사입니다. 물론 공중파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지역신문 등에서는 아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회사입니다. 회사이름은 솔렌시스라는 회사입니다. 제가 회사이름을 밝혀도 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실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사진의 회사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위의 회사에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링크를 걸어드리겠습니다. 솔렌시스 관련글 링크 : 갬코와 솔렌시스 의혹 풀릴까!


일단 제가 위의 솔렌시스라는 회사에 영업을 시작할때는 위의 사진처럼 건물이 들어서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몇몇의 직원들을 데리고 조그마한 사무실에 있을때 저는 위의회사의 존재를 알고서 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영업을 시작하고 1달만에 위의 회사가 공장부지를 구입하여 공장건립을 위한 첫삽을 뜨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드시는 분들이 계실것 입니다. "아니 공장설립전 회사를 어떡게 알아서 영업을 시작하였느냐?"라고 말입니다. 그건 알려드릴수 없습니다. 저만의 영업노하우기 때문입니다. 저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공장도 들어서지 않은회사를 찾아내서 영업을 시작하니 말입니다.


위의 사진에 회사에 영업을 시작하면서 담당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회사의 경영자 관련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게됩니다. 그리고 위의 솔렌시스라는 회사가 지역사회에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게되었습니다. 당시에 어느정도였냐면, 광주광역시가 LED 특화지역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을때 특화사업을 터치패널로 바꿔버릴뻔한 회사 입니다. 광주에 들어서면 "빛고을 광주"라고 쓰여져있는 안내문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LED조명에 특화하여 지역사회를 꾸미겠다는 안내문구 입니다. 그런데 위의 솔렌시스라는 회사가 들어서면서 광주시장도 그렇고 광주에 유력인사들이 솔렌시스라는 회사를 팍팍 밀어주고 터치패널 특수지구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LED가 언제 사업이 활황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당장에 눈에보이는 터치패널을 밀어줄 분위기 였습니다.


어쨌든 담당자와 많은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담당자도 가슴속에 많은것을 꿈꾸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다니던 대기업도 퇴사를하고 이곳 광주로 내려올 정도면 그분도 정말로 크나큰 꿈을 가슴에 품었던것이 맞습니다. 어쨌든 그분에게 경영자에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저는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경영자가 기업인수합병을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M&A라고 말하는 일을 하였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말을 듣는순간 이회사와는 거래를 절대로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업인수합병을 업으로 하였던 사람들은 절대로 제대로된 사업을 하는경우는 보지를 못하였습니다. 이유는 기업인수합병을 하는일은 한번하면 몇년은 놀고먹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운영하는것은 기다림의 연속인 것이어서 기업인수합병을 하던사람들은 그시간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위의 솔렌시스라는 회사도 마찬가지일것이라 판단이 되어서 저는 담당자에게 그냥 "광주에 오면 만나서 세상사 이야기나 합시다. 당신들과는 거래해 달라고 하지않겠으니 편하게 이야기나 합시다."라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몇번 그담당자를 만난것으로 솔렌시스와의 인연은 끝냈습니다.


그래도 솔렌시스라는 회사가 어떡게 되어가는지는 지켜봐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간이나면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진행상황등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생산이 시작되기도전에 2공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1공장도 3,000평 부지를 광주시가 거의 무상으로 빌려줬는데 2공장은 10,000평규모라고 합니다. 광주시장이 미쳤나 봅니다. 자신의 치적에 눈이멀어서 그회사에 대출을 엄청나게 해주도록 유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솔렌시스 사장은 대출받은 돈을 몽땅챙겨서 미국으로 날랐습니다. 그사장의 국적도 미국인이라 소환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자신의 치적에만 눈이멀어 사장의 국적도 확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알고서도 모른척 눈감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위의회사는 엄청난 지역사회의 파장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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